트랜센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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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센던스 (Transcendence, 2014) – 월리 피스터 감독
과학이 발전하며 컴퓨터가 개발되고 인터넷이 세상 전역을 연결시킴에 따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는 화두가 되어 왔다. 터미네이터, 아이로봇, AI 등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이용한 작품은 마치 흥행 보증 수표와 같다. 초기에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 환호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이 재앙을 불러오고 이를 막는다는 플롯. 대부분의 인공지능 관련 영화/소설들이 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트랜센던스> 역시 ‘기존’ 인공지능 영화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기존 영화들에서 인공지능이 통제할 수 없는 ‘악’ 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너무나도 예상 가능하고 진부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천재 과학자 윌과 그의 부인 에블린은 인공지능 프로토타입 컴퓨터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인간을 치료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윌은 지나친 과학의 발전을 경계하는 테러집단에 의해 피살당하게 되고, 부인 에블린은 윌의 정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뇌의 신호를 분석하여 인공지능 컴퓨터에 이식한다. 윌의 정신과 합쳐진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방대한 자료 및 정보처리 능력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 발전, 인간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윌의 정신이 합쳐진 인공지능은 어떤 물질로든지 변할 수 있는 나노 세포를 개발, 광범위 플랜트를 건설하여 어떤 병이던지 치유할 수 있고, 망가진 생태계의 밸런스를 잡고자 시도한다. 그 와중 인공지능의 독주를 경계하는 정부와 충돌이 일고, 정부가 군사/기술적으로 인공지능 제압이 불가능해 지자 윌의 아내인 에블린을 이용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에블린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고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윌은 극중 인공지능과 합쳐져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얻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가 한 일은 시력을 잃은 사람의 시신경을 되살리고, 죽기 직전의 사람의 신체를 복원시켜 생명을 구하는 등의 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이로움이 느껴지기 보다는 왠지 모를 이질감과 불쾌감이 더 크다. 윌의 모습을 보며 그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테러집단과 정부의 행동에 동조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를 단순히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윌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최선의 정치 형태는 진리를 추구하고 공명정대하며 언제나 공익을 위하는 ‘절대 1인’에 의한 통치라고 했다. 실제로 세상에는 국한적이지만 독재자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공리주의는 결국 이상적일 뿐, 언젠가 발생하는 부조리함이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체제를 전복시키게 된다. 인류는 이러한 과정을 긴 세월 동안 거쳐왔고 본능적으로 ‘절대자’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내에서도 인공지능화 된 윌이 자체적으로 진화를 할수록 관객들은 경이로움과 함께 기술이 악용될 경우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자신과 다른, 혹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뛰어넘은 누군가에 대해서는 내재적인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슷한 관점에서 인간은 감정이 없는 존재가 지배하는 세상을 경계한다. 주인공 윌 캐스터의 오랜 친구였던 맥스 워터스나 그의 지도 교수인 요셉 태거도 인공지능과 결합된 윌의 모습을 부정하기만 할 뿐, 타당한 이유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그는 윌이 아니야’라고 하며 거부감을 드러낼 뿐이다. 윌이 인간을 치유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성취감, 기쁨 등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프로그램상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이 인공지능에 호의를 가지게끔 하기 보다는 경계를 먼저 하게끔 하는 요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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