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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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투명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다.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투명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어이다. 또한 과학,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연구 혹은 창조물이 나왔을 때, 표절시비와 새로운 것의 새로움 정도를 분석하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투명한지에 대해 토론한다. ‘어떤 사람은 투명하다’ 혹은 ‘어느 부서는 투명성이 높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대상을 높게 평가하는 말이다. 이같이 현대사회에서는 투명하다는 것을 신뢰성과 연결시키며 서로에 대한 평가의 한 잣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저자는 투명성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투명사회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라는 것이다.
투명사회의 일차적 모습은 긍정사회로 나타난다. 부정성을 용납하지 않는 투명사회는 빈틈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정보의 공백도 시각의 공백도 용인하지 못한다. 빈틈이 없고, 모든 것이 가득한 세상을 생각해보자. ‘답답하다’라는 단어가 절로 나온다. 실제로 사유도 영감도 어떤 빈자리를 필요로 한다. 행복의 어원을 독일에서 찾아보면 행복이란 단어는 빈틈에서 유래한 것이다. 빈틈의 부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이 없는 사회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기 SNS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있지만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 형식은 ‘좋아요’이다. 계속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에서 ‘싫어요’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긍정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달의 속도가 빠르고 대량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투명사회는 전시사회이고, 모든 것이 전시가치로 측정된다. 어떤 비밀도 없이 즉각적인 소비에 내맡겨진 상품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포르노적 사회는 에로스뿐만 아니라 섹스마저 파괴하고, 전시의 만연은 오히려 이것들로부터 얻는 쾌락을 멀어지게 한다. 이것은 실생활의 예로서 쉽게 이해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론으로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전시사회는 전시를 강제하여 이미지의 증가를 넘어 이미지가 되라고 강압한다. 이러한 점에서 투명성은 폭력적이다.
이러한 빈틈의 부재는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명사회는 친밀사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상대방과의 거리가 없다. 더 자세히 기술하면, 친밀사회에서는 자신과 타인과의 거리는 물론 객관적으로 자신을 파악할만한 자기 자신과의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나르시시즘으로 진행되어 인간사회에서 필수적인 경험의 부재를 형성하게 만든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경험이 없이 나르시시즘적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계를 한정하지 못하여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 경계가 흐릿하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발달된 인터넷 환경을 통한 SNS로 인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데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비슷한 포즈로 찍은 100장의 사진중에 가장 잘 나온 1장을 골라 전시하며 스스로를 그 모습으로 파악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나르시시즘의 깊은 골짜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태 일반 대중들은 현대사회의 투명성을 굉장히 장점만 있는 이상국가의 모습에 빗대어 생각해왔다. 출간과 함께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투명성의 한 면만을 보며 몰지각하게 믿고 따라가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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