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 에리피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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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자아의 상실과 불안, 도피의 메커니즘과 함께 그 회복의 길을 제시하다
역사를 약간은 다른 시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의식수준이 발달하면서부터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유’를 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움직임으로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에서는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던 계급 사회, 남성 우월주의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켜 사회를 바꾸었다. 이러한 큰 흐름은 아니지만 요즘에도 이 같은 자유를 위한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개개인의 자유를 그들이 처한 상황 혹은 상사로부터 얻기 위해 그들만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같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힘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찌 보면 당연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조금 자세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로 자유를 침해받았으며, 자유를 빼앗는 주체는 누구이며, 자유를 되찾으려는 그들의 움직임은 실제로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주는지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절제하고 배려하고 살면서 자유를 빼앗긴다. 그들은 주위 사람으로부터의 칭찬, 기분 전환,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와 같은 행동으로 고독감과 무력감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자 개인이 취하는 각자만의 발버둥이다.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들은 흔히 말하는 외적 권위로부터의 자유와 스스로 자기를 얽매여 만드는 익명의 권위로부터의 자유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명령하는 외적 권위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비교적 벗어나려는 목표 대상이 뚜렷하여 발버둥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에 기꺼이 따르려 하고 주위 사람들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여 여론이나 상식 같은 틀에 갇힌다. 이처럼 익명의 권위가 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런 익명의 권위가 맡고 있는 역할은 간과한다. 익명의 권위는 요즘같이 많은 봉건적 외적 권위가 사라져 ‘피상적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외부의 힘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지만 내부의 제약과 충동, 두려움에 매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통해 자유를 얻어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혼자가 되는 것을 느껴가며 또 다른 이상한 흐름이 생기게 되었다.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다. 중세 사회의 전통적 유대로부터 해방된 것은 독립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자유는 고독과 고립을 느끼게 했고, 회의와 불안으로 그들을 가득 채웠으며, 결국 새로운 복종과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몰아넣었다. 마치 하지 말라고(권위)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심리처럼 사람들은 그들을 가둘 틀을 찾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는 파시즘 국가이다. 파시즘 국가에서 지도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를 포기하게 만들고, 강력한 통치를 하였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열광적으로 반응하였으며 그들 스스로 복종하였다. 이렇게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저자는 정확하게 꼬집었으며 미국에서도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그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진짜 목적이다.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심리에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있는데 권위주의와 파괴성이 그것들이다. 위에서 파시즘을 예로든 것처럼 사람들은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 환상이 있다. 각자의 자유 의지를 통해 행동하는 것보다 상명하복하는 것이 보다 쉽게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는 피학적, 가학적의 다른 양상이 일어난다. 파시즘과 같이 외부로부터 억압받는 양상이 피학적 권위주의를 통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하는 방식이다. 가학적 권위주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보통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압력을 휘두르며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 도피의 메커니즘은 파괴성이다. 파괴성은 가학적 권위주의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가학, 피학적 권위주의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공생을 목표로 삼지만 파괴의 메커니즘은 그 대상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르다. 가학증은 타인을 지배함으로써 원자화된 개인을 강화하려 하지만, 파괴성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없애는 방법으로 개인을 강화하려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차츰 발달한 자본주의의 독점적 단계에서 인간적 자유를 지향하는 두 경향의 비중이 달라졌다. 자유를 얻으면서 개인의 무력감과 고독감은 늘어났고, 모든 전통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는 더욱 확연해졌고, 개인이 경제적 성과를 이룰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사회에 반하여 사람들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며 또 한 세기를 지났다.
책을 읽으며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자유에 대한 타고난 갈망으로 자유를 얻었고, 복종에 대한 본능적인 바람으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숨겨진 만족감을 얻었다. 나름대로 지식인들이 이끄는 세상에서 원하는 적절한 강도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어린 아이와 같이 감탄고토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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