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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어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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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6,259회 작성일 14-04-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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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어주심 - 이찬수
 
  내가 인천에서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매년 2월에 3주간에 걸쳐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다. 매년 성경 66권중 한 권의 말씀을 붙잡고 21일 동안 말씀을 풀어 주시는데, 이번 년도는 그 중 구약의 룻기 서에 관한 내용으로 설교 말씀을 하셨다. 주말에 집에 올라가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매일 참석하기는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룻기서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꿰뚫지 못하고 부분씩만 이해하면서 아쉬워하는 찰나에, 교회의 한 선배님께서 새벽기도 말씀이 잘 정리되어 있다면서 이찬수 목사님의 ‘붙들어주심’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한 장 한 장 읽다보니 띄엄띄엄 설교를 들으면서 연결이 되지 않던 부분들이 연결 되었고, 보다 쉽게 룻기 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 66권중 구약 중에서도 사사기 다음에 위치한 룻기 서는 이방 여자이면서도 훗날 다윗 왕과 예수그리스도의 혈통이 된 이방 사람 모압 여인 룻의 이야기이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살던 하나님의 약속의 땅 유다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든다. 엘리멜렉은 그러자 부인인 나오미와 두 아들과 그들의 며느리와 함께 이방 땅인 모압 땅으로 이주하지만, 그 땅에서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은 죽게 된다. 살아남은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이방인인 며느리들을 축복하며 각자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며느리 중 하나인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보아스라는 유력자를 만나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혈통이 된다 라는 내용이다. 비 크리스천들이 얼핏 룻기 서를 읽어 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시어머니를 생각하고 잘 돌보면 며느리가 나중에 복을 받아서 잘 되는 흔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뻔해 보이는(비 크리스천들에게) 스토리임에도 룻기 서에는 마음에 두고 깊게 생각해 볼만 한 두 가지 교훈이 들어있다. 그 두 가지는 히브리 원어인 두 가지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데, 하나는 ‘헤세드’ 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슈브’ 라는 단어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 땅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 하는 것을 뜻한다. ‘약속의 땅’에 있는 것은 곧 바른 길에 서 있으며,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대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와 엘리멜렉은 찰나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렵지만 꼭 헤쳐 나가야 하는 길’ 이 아닌 ‘지금은 쉬워 보이지만 옳지 않은 길’을 택했고, 결국에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어려움은 자기가 선택한 어떤 길을 가든지 존재하고, 피해가기 보다는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함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절망 속에서 나오미의 반전은 ‘슈브’ 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 ‘슈브’는 우리말로 ‘돌아오라’ 라고 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남편을 따라 모압 땅으로 간 나오미는 어느 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게 된다. 이것은 나오미에게 들리는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소리였다. 다시 말하면 ‘네가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절망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내가 허락하고 약속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라’ 라는 말씀이었다. 나오미의 회복은 결국 이 하나님의 사랑의 ‘슈브’ 소리를 듣고 시작되었다. 계속된 아픔에도 절망에 빠져있지 않고 자신에게 들리는 소리에, 특히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놓았던 덕분이었다.
  룻기서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단어는 ‘헤세드’ 이다. ‘헤세드’는 우리말로 ‘선대’ 라는 단어로써, 구약에서 ‘헤세드’는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헤세드’ 이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하나님께서는 이 약자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아래 성경 구절을 보면 룻의 시어머니를 향한 ‘헤세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떤 큰 헌금을 한다든지, 눈에 보이게 선행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정의를 행하고, 연약한 자들을 향한 헤세드의 마음으로 그들을 돌봐주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마음의 상태를 원하시는 것이다.
   룻기서는 물론 크리스천들에게는 큰 의미와 희망을 던져주는 성경 중 하나이다. 혼돈으로 가득했던 사사시대에 다윗 왕이 등장하는 결말은 안정을 의미하며, 이방 여자가 하나님의 뜻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따지면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룻기서를 읽으며 슈브와 헤세드의 단어를 음미하다보면, 어떠한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웹서핑에서 뉴스 기사의 댓글을 보거나 가끔 아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빈번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글과 말 속의 대부분의 생각의 초점이 타인(특별히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 보다는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심심찮게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룻기서 에서 말씀하신 ‘헤세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 개인의 역량과 능력, 효율성을 중시하며 그것으로 평가받는 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에 이런 현상들이 딱히 놀라운 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우리 사회의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나고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쉽고 쾌락이 가득한 길로 가다가 결국 끝이 없는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절망 속에서 ‘슈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열수 있다면, 혹은 그 전에 우리의 사회가 ‘헤세드’의 마음으로 가득 하다면 누구나 마음이 풍족해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 2014. 04. 07 작성, 2014. 04. 29 관리자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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