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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인물열전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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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096회 작성일 14-04-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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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인물열전 (빈센트 반 고흐)


 

EBS 라디오는 많은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준다. 어학 관련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책 읽어주는 라디오’라는 큰 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가지 문학 작품 등을 읽어주고 소개해 준다. ‘화제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는 최근 많이 회자되고 있는 서적의 일부 내용을 몇 회에 걸쳐 읽어주어서 어떤 책이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듣기만해도 재미가 있어서 남은 내용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 읽고 싶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북카페’에서는 최신 작품뿐 아니라 오래된 명작들까지도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읽어줌에 따라 오랜만에 그 내용을 다시 음미하도록 하거나 혹은 모르고 지나친 숨겨져 있던 작품들을 알 수 있게끔 해준다. ‘라디오 인물열전’이라는 코너는 다른 ‘읽어주는’ 프로그램과는 달리 실제 하는 어떤 작품을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알려진 문헌 등을 바탕으로 제작된 극본으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여 한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코너가 흥미로운 이유는 위인전기와 같은 내용을 드라마처럼 진행해주니 그 이야기가 재미있게 느껴지면서 그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였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갔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물의 삶을 다루기에는 그 내용이 매우 자세하거나 방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이 그 인물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끔 만들어준다는 점이 더 큰 의의를 둔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번에 관심 있게 들었던 인물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상주의 등을 비롯한 19세기 이후의 많은 회화 작가들이 유독 많이 알려져 있지만, ‘빈센트 반 고흐’만큼 그 인생에 극적인 이야기가 있는 삶을 산 작가도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남겼던 많은 풍경화, 초상화 등의 작품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로 여겨져 그 가격은 매번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 화가의 이름을 들을 때 떠오르는 단어들은 ‘자화상’, ‘우울함’, ‘별’, ‘해바라기’ 등이며, 그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자신의 감정을 매우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그가 산 삶의 극적인 순간들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이번에 들었던 ‘라디오 인물열전’이 아니었으면 나도 ‘반고흐’에 대한 것을 어설프게 귀동냥으로 들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갔는지, 그리고 어떠한 배경에서 그런 작품을 그리게 되었는지 등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빈센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는 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반 고흐’ 집안은 원래 미술과 종교의 직업으로 대를 잇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으며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놓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른이 되었을 때조차 가족 곁을 떠나는 것을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가 가족에서 떨어져 산 이후로 점점 고립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20대에 아트 딜러로 일을 하다 밀레의 사실주의적 작품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밀레는 농민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농촌의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빈센트’는 그의 그림 속에 있는 농부의 노동과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하며, ‘그림 한 장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 수 있구나. 이런 것이 진짜 그림이야.’ 라고 했다고 한다. 실생활에서 소재를 찾는 사실주의는 낭만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당시의 미술계의 유행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밀레의 그림을 통해 처음으로 사실주의를 접하게 되어 새로운 그림의 세계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는 그 무렵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에서 회의를 느끼게 되어 그 일을 그만두고 신학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선교 활동을 하는 동안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그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려고 했다. 이는 앞서 밀레의 작품을 중요시 여겼던 점과 일맥상통하는데, 가뜩이나 감정적이며 고독했었던 그는 그 암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러한 점이 후에 그의 초기 작품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신앙생활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하였는데, ‘목회자가 되는 것만이 꼭 답은 아닐 수 있어. 보아하니 틈틈히 광부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 같던데, 자네의 그림 덕분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달라진다면 그것 역시 구원이 아니겠나.’ 라는 말에 그는 자신의 숙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소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빈센트’의 작가로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은 그의 동생 ‘테오(테오도로스)’이다. 그는 화가의 작품을 사고 팔며 때로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도 했던 화상으로 지내었는데, 그가 ‘빈센트’에게 그림을 그릴 것을 권하게 되었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형의 작업 활동을 돕기 위해 지원을 하였다. 파리의 몽마르트에서 지냈던 그는 후에 ‘빈센트’가 파리에서 여러 인상주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도록 나서주었고, 이로 인해 ‘빈센트’는 초기의 어두운 분위기의 형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인상주의의 화풍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 초기 ‘빈센트’의 작품은 매우 어두웠다고 한다. ‘감자 먹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그 시기의 작품들은 본인의 성격에 맞게끔 밝은 색은 거의 쓰지 않고 밀레의 사실주의적 요소에 그의 감정을 실어서 표현하여, 그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직접 정직하게 번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런 그가 파리에서 만난 ‘폴 세잔’, ‘클로드 모네’ 등과의 교류를 통해 색채와 질감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그는 결국 ‘그들의 그림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라고 하며 파리의 생활을 2년정도 한 채 아를로 떠났다고 한다.



 

아를은 ‘빈센트’의 작품 활동 기간 중에서 심정적으로나 작가로의 활동적으로나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국적이며 지저분했던 그곳에서 그는 풍경과 햇빛을 보게 되었고 그에 매료가 되어 쉴 틈 없이 그림을 그리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리에서 만나 연락을 주고 받던 많은 다른 화가들에게 아를의 매력을 편지로 알려주며 그들이 아를으로 와 함께 새로운 화가 공동체가 꾸며지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그는 강하고 활기찬 색채에 빠졌으며, ‘크로미 옐로우’와 같은 노랑계열을 색을 매우 많이 활용하게 되었다. 특히 그 지역에 많이 보였던 해바라기에 빠져서 많은 해바라기 작품을 그렸고 그가 지내는 작업 공간마저 ‘노란집’으로 꾸미고 해바라기를 가득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빈센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인물인 ‘고갱’이 오게 된다.



 

‘고갱’은 ‘반 고흐’ 못지 않게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간 희대의 작가인데, 두 사람의 공통점도 많다. 그도 35세의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미술가로 나섰으며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가길 원했던 점에서 사회적응력이 어느 정도 부족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느 곳에도 의지 할 곳이 없었던 외로운 화가였지만 후대에서 그 높은 가치를 인정 받은 화가이다. 이런 고갱은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빈센트’와 그의 동생인 ‘테오’를 만났으며 특히 금전적으로 ‘테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테오’의 간청으로 형인 ‘빈센트’와 함께 아를에 있는 ‘노란집’에서 ‘빈센트’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두 사람은 본래 각자의 배타적인 성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빈센트’가 알아주고 함께 해 주길 바랬던 그곳의 삶이 ‘고갱’에게는 답답하기만 하였고, 이는 점차 두 사람 사이를 조금씩 멀어지게 하였다. 그런 중에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등과 같은 그림을 그려서 ‘빈센트’를 비아냥거리고 그와 그 주위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조소를 의도적으로 담았다. 자신에 대한 조롱 섞인 그림들을 그렸다는 사실과 함께 ‘고갱’이 자기의 ‘화가 공동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점 때문에 둘은 크게 싸운 뒤, 결국 ‘빈센트’는 홧김에 자기 귀를 잘라버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 있었던 ‘고갱’ 이외에는 정확하게 아무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쨌든 그 시기에 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 닫았고 ‘빈센트’는 점차 더욱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빈센트’는 ‘램브란트’처럼 유독 ‘자화상’을 매우 많이 그렸던 작가이다. 게다가 모든 자화상은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있는데, 자기 스스로의 불안한 심리를 담고 있으며 그를 통해 스스로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정신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 시기에 그만의 특유한 화풍인 소용돌이치는 특징이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외부와의 단절된 삶 속에서 그의 화풍은 절정으로 치달아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대작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서 나온 뒤 그의 인생에서 반쪽과 같은 동생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심각한 좌절을 겪으며 심한 우울증에 빠진 뒤 결국 총을 스스로의 가슴에 겨냥하고 만다. 그의 나이, 37세일 때였다.



 

우리나라의 서편제에서도 눈이 멀게 된 ‘한’을 통해 예술의 극치에 닿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빈센트 반 고흐’도 그가 평생을 걸쳐 겪고 있던 정신적인 질환 속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절정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아, 그 과정에 얼마나 치열한 그의 삶이 있었는가,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사후에 동생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가 두 형제 사이에 있었던 편지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고,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그 진가를 알리게 되어, 그가 미술사에서 전무후무 할만한 작가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그는 현대 미술의 토대를 형성하는데 빠질 수 없는 작가라고 한다. 밀레의 ‘사실주의’를 동경하였던 그가 죽기 전에 남겼던 많은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적이기 보다는 매우 감성적이어서 그 누가 보아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주게 되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어느 드라마보다 극적인 한 사람의 인생을 감동적으로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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