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s of Seeing,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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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of Seeing”

대학교 4학년때 미국사회와 영화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교수님께서 참고 문헌으로 언급했던 책을 2년만에 읽었다. 살면서 미국문화에 알게 모르게 중독되어 살면서도 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수강했던 수업이었고 주된 내용은 미국문화가 미디어를 통하여 잠재의식 속으로 심어지는 과정들, 그리고 그 과정의 선봉을 서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의 역사와 숨겨진 선입견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중 헐리우드 영화와 성차별과 관련된 강의 중 해당 책을 reference로 언급하시고 시간이 되면 읽어보라고 하셨지만 굳이 그렇게 까지 찾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목은 Ways of Seeing이고 1972년 초판발행후 John Berger를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게 한 책이라고 하셨다. 수업도우미를 했던 터라 교수님께서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내게 이 책을 선물로 주셨고 읽어보겠노라 약속했지만 대학원진학을 하며 잊고 있었던 책이기도 했다. 연구실 책장에 2년간 꽂혀 있었지만 그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다가 갑자기 제목이 주는 강력한 끌림 때문에 읽었다. 실제 책은 얇은 편이며 작고 그림이 매우 많이 들어있어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술과 관련되어있었으며 과학적인 단어가 아닌 인문학적인 어휘들이 많아서 읽는데 힘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2년전 수강했던 그 수업이 2년늦게 머릿속에서 완성되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참 행복하기도 했다.
자칫 아무 생각없이 읽다보면 주제를 가늠할 수 없을 법한 책이었다. 초반에는 미술작품의 복제품들의 의미, 중반에 가면서 여자들을 보는 편견과 수백년간 이어져온 남성중심적 시선에 대해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현대사회에서의 광고를 분석하며 끝난다. 수업을 들으면서는 책 중반의 여성들에 대한 남성중심적인 시선에 대한 내용만 배웠지 앞뒤에 있는 다른 부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사실 이 책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이라고만 착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제목이 역시 가장 큰 줄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Ways of Seeing"
사물을 보는 방법이다. 무엇을 ‘본다’ 라는 것이 참 객관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 같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고 실제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사람은 시각에 사고판단의 큰 역할을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는 방식은 전혀 객관적이지 못하고 특정방식으로 ‘보도록’만드는, 이미 짜인 각본대로 보게 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사람들이 망각하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고정된 시각을 통하여 세상을 보면서도 우리는 스스로 판단했다고 착각하며 산다. 이렇게 왜곡된 시선을 통하여 사리를 판단하다 보면 결국 그 시선을 심어주길 원했던 세력의 의도와 부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책 초반에는 사진/방송의 발명으로 특정 공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작품이 여러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TV를 통하여 보여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Reproduction들은 그 작품이 원래 있던 곳이 아니라 관찰자의 집에서 그들의 벽지, 가구 등 익숙한 일상 속에서 보여지게 되고 관찰자들은 그들 나름의 해석을 하게 된다. 이런 개인적인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게 되며 그 작품은 다양화(diversified) 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작가는 한가지 지적을 한다.
‘It has acquired a new kind of impressiveness. Not because of what it shows – not because of the meaning of its image. It has become impressive, mysterious, because of its market value.’
이렇게 ‘Original’작품을 복제한 이미지를 보는 관찰자는 더 이상 이 원작이 주는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현재 보고 있는 것이 비싸고 희소가치 있으며 원래 소장된 박물관에서 베껴온 가작이라는 사실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소가치는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라 ‘얼마나 희소 한가’ 라는 가치에 따라 화폐단위에 따른 시장가치로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실제 이런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직접 보러 그 박물관/미술관을 찾아 가는 대다수의 대중은 그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는 그 작품을 대면하기 직전까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고 읽은 그 작품에 대한 비평과 함께
‘이제 실제 원작 앞에 서서 자세히 바라다 보면 나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되면 그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의 희소가치 때문에 평가되게 된다고 한다.
작가가 지적했던 위와 같은 반응은 생각해보면 나도 박물관에 갈 때마다 항상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로마의 수많은 유적들을 볼 때마다 든 생각은 사실 그 미학적 가치보다는 ‘와, 내가 책으로만 보던, 영화로만 보던,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에서 가짜가 아닌 실제 진짜를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고 실제 눈도장 찍고 넘어가던 때가 많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전율을 느끼며 작품을 바라봤던 때는 2008년 여름 바티칸에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티칸에서만큼은 돈을 지불하고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he way we see things is affected by what we know or what we believe.’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이제 일상적인 말이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실제로 형언 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투어를 받으며 작품들을 봤을 때는 단순히 유명한 작품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떠나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던 그 당시에 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의 시선이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입된 시선에 의한 것임은 어느 정도 자각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실제 탈피하여 좀더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참 힘들다고 생각한다.
‘Capitalism survives by forcing the majority, whom it exploits, to define their own interests as narrowly as possible. Today in the developed countries it is being achieved by imposing a false standard of what is and what is not desirable.’
이렇듯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은 대표적으로 사진이라는reproduction 방식을 통하여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철저히 왜곡될 수 있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을 항상 채우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극명하게 찾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리를 판단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적 편견으로 대변되는 새로 주입되는 시선, 그리고 주입된 시선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수백 년 전부터 가치관에 박혀있는 시선들이 결국 편견이 되고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사물을 판단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쁘다 좋다라고 판단한다기 보다는 적어도 이를 자각하며 살 수만 있어도 세상을 보는 (Ways of Seeing)방식이 외부에 의해 갈대처럼 왜곡되며 흔들리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막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어렵고 철학적이기도 했지만 그래프, 수치들과 객관적인 사실을 중요시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 믿는 경향을 가지는 과학도로서 분명히 한번은 짚어봄직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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