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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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고등학생 때로 약 6~7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워낙 오랜 시간 전이라 당시의 느낌이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던 듯 하다. 고등학생으로써 당장 눈앞에 닥친 수능이라는 벽과 그 이후에 있을 대학 생활이라는 삶을 너무나도 당연시 하고 있었기에, ‘나 자신의 삶’, ‘자아가 이끄는 길’이라는 생각이 피부에 와닿기에는 앞으로 주어진 삶에 안주하는 마음이 너무 컸던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느덧 이십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연금술사’라는 책은 또다른 경험과 더욱 깊은 가치를 선사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의 단순한 동경심을 넘어 준사회생활 (대학원에 있는 지금)과 곧 닥쳐올 사회생활로 인해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삶이 더 이상 먼 미래에 있을 막연한 환상이 아닌 실제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과거의 ‘나’가 신학교에 다니며 ‘떠도는 삶을 꿈꿨던 산티아고’였다면, 현재는 양을 팔고 이집트의 보물을 찾아 떠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양치기 산티아고’에 가깝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삶의 선택들을 생각해본다. 중, 고등학교 때 수능이 최종 목표였던 삶, 그나마 내가 원했고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던 전공의 선택과 그에 맞는 대학으로의 진학, 그리고 더욱 심도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선택한 현재의 삶. 과연 이 중에 나의 ‘자아’가 이끈 선택은 무엇이고, 그 ‘자아’는 무엇을 바라보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인가. 혹시 그 동안 눈 앞의 편안함과 보장된 삶의 유혹에 빠져 나의 ‘자아’가 외침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산티아고가 집시 노파의 해몽을 불신하고 이집트로 떠나라는 노인의 말에 의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물을 찾아 떠나게 된 것은 ‘자아가 이끄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지고 궁극적인 삶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산티아고가 노인의 제안을 단순히 사기로 치부하고 양을 파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국 이름없이 세상을 떠돌기만 하는 한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자아가 이끄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진정한 ‘나의 삶’을 살수 있는 길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잘 하지는 않았다. 해보고 싶은 일이 무척이나 자주 바뀌었기도 하고, 그러한 경험 같은 것들도 많이 해보지를 못했기도 했다. 하지만 추상적으로 나마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동남아시아의 땅을 잔뜩 사서 제 2의 아마존 숲을 만들어 지구의 이산화탄수를 왕창 줄어버려야 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인구 증가 문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국제 우주 거주지를 만들어서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어야지’라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 하기도, 어쩌면 발칙하기도 한 생각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가슴 한 구석에서는 그 때의 열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현재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어쩌면 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나의 마음 속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함으로써 기여할 수 있을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의 삶의 방향 중 무엇이 옳은지 혹은 더 나은 선택인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산티아고 처럼 가지고 있는 양을 한 번에 모두 팔아서 일단 새롭게 부딪혀 보는 시작하는 것과, 혹은 천천히 양을 팔며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조금 먼 미래를 보는 것 사이에 아직도 마음 속으로는 혼란과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이십대, 조금 무모해 보일지라도 산티아고와 같은 과감한 선택과 자아가 이끄는 길로 몸을 던져 보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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