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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price of in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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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4,885회 작성일 13-12-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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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 (price of inequality) - 조지프 스티글리츠


 




‘price of inequality’를 통해서 조지프 스티글리츠(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불평등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었다. 불평등을 받고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써,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얻는 정의가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적인 이익 추구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만인의 행복을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금융 위기를 거친 오늘 날에는, 어느 누구도 금융업자들의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만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가 가정했던 대로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받는 보상과 개인의 사회에 미치는 기여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계 생산성 이론>의 내용이다. 여기서 사회적 수익과 보수가 일치하도록 개입하는 것은 정부이고,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를 <시장 실패>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바라본 공산주의는 노력한 자와 노력하지 않은 자가 평등한, 그래서 모두가 일을 하려하지 않는 그래서 결국 모두가 가난해지는 일련의 악순환 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공산주의를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만큼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그 자본주의 속의 불평등 또한 옹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한 자가 적게 받고 노력을 적게 한 자가 많이 받는 다면 이것은 공산주의만도 못한 사회가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불평등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거나(‘노력을 했으나 그만큼 보상을 얻지 못한 운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 하는 생각), 시장경제 속에서 이론에 맞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부호들은 어쨌거나 그만한 노력을 했겠지’ 하는 생각)이다.


 


 


저자가 신랄하게 비판한 민주주의의 정치 시스템은 소득 재분배의 정도를 제한하고 시장의 게임의 규칙을 힘(돈, 권력)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끔 만들어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선물>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거액의 돈을 뽑아내서 그들에게 안겨주고 있었다. 그들은 부를 창출한 대가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창출된 부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차지하게 된다. 




 경쟁이 지속되는 시장에서는 아무리 힘이 강한 기업이라고 해도 정상 수익률을 넘어서는 이윤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한 기업이 상품을 판매하여 정상 수익률을 넘어서는 이윤율을 올리면,경쟁 기업들은 가격을 낮추어 고객을 끌어가려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떨어지고 이윤율은 점점 떨어져서 결국 ‘제로’가 된다. 이러한 상황은 막대한 이윤을 노리는 사람들로서는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확실히 애덤 스미스가 말한 이상적인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 날수가 없다. 따라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선 분명 시장의 빈틈을 노려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은 여러 가지 장벽을 만들어 경쟁을 회피하며, 정상 수익률을 넘어서는 이윤율을 올리게 된다. 흔히 아는 경쟁 기업이 생기면 단가를 낮추고 다시 독점권이 견고해졌을 때, 단가를 올리는 방식의 경영전략 외에도 정치와 결합하여 시장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 인해서 시장경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보상’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쟁이 기업이 무너지는 것 자체가 ‘Negative sum’(승자가 얻는 이득이 패자가 잃는 손해보다 매우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식(이상적으로 시장경제와 맞지 않은)으로 얻은 막대한 부는 결코 분배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이로써 2차적으로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의 정의나, 경제 전반의 효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정부는 이런 행위들을 금지했어야 마땅하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부자에게로 돈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원이 탕진된다는 점에서 이런 형태의 지대 추구 행위는 명백히 ‘Negative sum’(승자가 얻는 이득이 패자가 잃는 손해보다 매우적은)이다. 즉, 사회에 대한 공헌과 개인의 이윤추구가 일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Negative sum’ 으로 인해 금융위기가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이 뻔히 내다보이던 금융위기 전에도, 정부는 이런 행위들을 뿌리 뽑지 않았고, 그 이유를 시장 실패를 막아야 하는 정부의 불찰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로비 활동 및 선거 캠페인 기부 활동에 대한 금융 부문의 막대한 투자 때문’에 정부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부자가 되는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를 빼앗아 가지는 것이다. 앞의 방법은 사회의 부를 늘리지만, 뒤의 방법은 대개 사회의 부를 감소시킨다. 부를 빼앗는 과정에서 부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놓는 상품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기는 독점자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치르는 상대에게서 돈을 가로챔과 동시에 가치를 파괴한다. 독점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을 제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사회의 부를 파괴한다는 면에서 ‘불평등’을 떠나 정부는 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불평등’을 막기 위해서(우리가 사회에 ‘일’한 만큼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 ‘사회의 부’를 떠나더라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1%를 위해 99%가 피해를 보는 자본주의라면 그것은 공산주의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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