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전원 교향악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1,023회 작성일 25-08-18 14:16

본문

전원 교향악

- 앙드레 지드 –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연인 사이의 애정, 종교적 신앙심과 인류를 향한 박애. 그리고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들.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기쁨과 안정을, 때로는 연민과 위로를, 혹은 헌신과 희생을 가져오며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부정(不貞)하여 이루어질 수 없기도, 혹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변질되어 불행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악』에는 목사의 종교적 신앙심과 연민에서 비롯된 선의가 점차 자기 합리화된 욕망으로 변질되며 발생하는 비극이 등장한다.

 

 작은 시골마을의 목사는 어느 날 한 노파의 임종을 지키러 갔다가 고아가 된 시각장애 소녀를 만난다. 귀머거리 노파의 손에서 자라 말하는 법조차 익히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의 소녀. 목사는 아이를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목사에게는 다섯 자녀가 있었고, 목사의 아내는 자신들의 자녀를 키우기도 버겁기 때문에 소녀를 데려와 돌보는 것에 불평을 하지만, 그는 ‘외양간의 99마리 양보다 길 잃은 1마리의 양이 더 소중하다.’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내세우며 소녀에게 제르트뤼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소녀를 돌보고 교육시키는데 정성을 다한다. 사람과 제대로 된 소통도 어려웠던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보살핌 아래에서 점차 말을 배우고, 세상을 익히며 성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구원해준 목사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게 되고, 목사 역시 아름답고 순수한 제르트뤼드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목사는 본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정리하거나 단념하기 보다는, 자신이 행하는 행위와 제르트뤼드에게 느끼는 감정을 선의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왜곡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제르트뤼드의 시력이 수술로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력을 얻게 된 제르트뤼드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마주함과 동시에 눈을 감은 채로는 알 수 없던,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목사의 아내와, 그 가정에 미친 추악한 불행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제르트뤼드의 세상은 목사가 들려주는 말과 설명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전원 교향악 속 새가 지저귀고, 사람들이 춤을 추며, 햇살이 비추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 그러나 눈을 뜨고 마주한 것은 남편의 외도를 지켜보며 절망에 빠진 아내의 얼굴과, 아버지에 의해 좌절을 겪은 아들의 무기력함과, 그 모든 불행을 이끈 당사자가 본인이라는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사실이었다.

 제르트뤼드는 눈을 떴지만, 눈을 뜨며 마주하게 된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목사는 그제서야 본인이 제르트뤼드를 연인으로 여겼으며,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깨닫지만 이미 늦은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그러나 가끔, 그 감정 뒤에 수반되는 책임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든, 연인의 사랑이든, 혹은 신앙심에서 비롯된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내에게 지켜야 했던 신의도 내버리고, 아버지로서의 의무도 저버린 채 추구한 그 감정을 단순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을까?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구원한다는 이름으로 그녀의 삶에 개입했지만, 가족 뿐 아니라 제르트뤼드에게 조차 책임을 지지 못한 채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욕망으로 본인과 주변의 불행만 야기하였다. 사랑은 누군가를 지켜내고 세워주는 힘이 될 수도, 상대를 옭아매고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을 무엇으로 만드는가는 그 뒤의 책임의 유무에 달려있다는 것을 느끼며 책을 덮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