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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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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443회 작성일 25-09-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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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말이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함축한다. 마치 단어의 부재가 그 상실의 깊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입동'은 바로 그 무명의 고통을 섬세하고도 냉혹하게 그려낸다.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어린 아들 영우를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는, 상실이 어떻게 한 삶을 통째로 뒤흔들고 무너뜨리는지 보여준다.

이야기는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도배'로 막을 연다. 아내의 뜬금없는 제안은 겉보기에는 단순히 몇 주 전 집 정리를 해 주겠다며 찾아온 시어머니가 엎지른 복분자주 얼룩을 지우려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아들의 죽음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삶의 사막화를 덮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리라. 얼룩진 벽지는 봄에 떠나간 어린 아들 영우의 부재가 남긴 상처를, 그리고 그 위를 덧칠하려는 도배는 그 상처를 애써 외면하고 지우려는 시도가 아닐까. 하지만 도배를 진행하다가 영우의 이름을 쓴 낙서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세 번째 벽지를 바르던 아내는 벽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영우의 흔적을 발견한다.


 "여기.. 영우가 자기 이름 써 놨어.. 근데 다 못 썼어..." 


이 구절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비극적면서, 아들의 흔적을 덮으려 했던 도배는 오히려 그 존재의 선명한 각인만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다. 영우의 낙서는 아무리 덮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상실의 상흔이자, 부모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다. 그 낙서는 아이가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한 삶의 불완전한 조각이자, 남겨진 부모가 감당해야 할 영원한 슬픔의 무언가이다.

소설의 제목인 '입동(立冬)'은 이 모든 고통과 맞닿아 있다. 입동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절기이다. 아직 한파가 오려면 멀었다는 표현처럼, 부부는 앞으로 닥쳐올 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의 문턱에 서 있다. 그들의 삶은 영우가 떠난 이후 이미 겨울처럼 차갑고 황량해졌다. 소설의 마지막,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는 묘사는 단순히 온도가 낮은 의미의 추위를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상실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조용히 묻는다. 흔히 우리는 큰 슬픔을 겪는 이들에게 "시간이 약이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와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입동'은 그러한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상실은 도배로 덮을 수 있는 얼룩이 아니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쉽게 지워지는 흔적도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남겨진 흔적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극복을 종용하는 조언이 아니라, 그 슬픔과 함께 서성이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공감과 이해이다. 결국 상실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그 고통을 끌어안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부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우의 빈자리를, 그리고 벽에 새겨진 그 작은 낙서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상실의 그림자는 영원히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절망 속에서도 아주 미세한 희망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벽지를 덧칠하며 서로를 마주했던 부부의 모습처럼,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이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의 손을 잡고 겨울을 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울러, 상실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고통,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어떤 모습인지 깨닫게 해준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되며, 대신 침묵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지켜봐 주는 것 또한 중요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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