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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누군가의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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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950회 작성일 25-09-18 15:41

본문

 우리는 보통 헌법으로 죄를 찾는다. 그 정교한 체계는 ‘사회’의 최소한을 지켜준다.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의 죄책은 법정 바깥에서 태어난다. 말 한마디, 눈길 한 번, 단정과 방관, 그 자잘한 파문들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 부풀어 올라 상처가 된다. 법은 상처를 다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으로 죄를 판정할 것인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인 『속죄』는 그 질문 앞에서 법과 상처, 의도와 결과, 기억과 서사라는 두께가 다른 사전들을 차례로 펼친다. 특히 “내가 본 대로 말했을 뿐”이라는 증언의 윤리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의도의 빈틈을 정면으로 비춘다. 여기서 죄는 더 이상 한 줄의 조문이 아니라, 타자에게 남긴 흔적의 총합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언제든 법 앞에 무죄이면서도 타인의 고통 앞에 유죄가 될 수 있다. 『속죄』는 바로 그 아이러니를 한 생의 길이로 증명하는 소설이다.



 상류층 저택의 소녀 브라이오니는 우연히 본 장면을 오해하고, 그 오해를 확신으로 굳혀 청년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법은 소녀의 말을 받아들이고, 로비의 인생은 산산이 부서진다. 세월이 흐른 뒤 브라이오니는 작가가 되어 글쓰기로 속죄를 시도하지만, 기록은 현실을 되돌려 놓지 못한다.


1. 죄의 기준: 법정 안과 밖

 법은 로비를 유죄로 만들었지만, 독자는 곧 깨닫는다. 진짜 죄는 법정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악의가 없었다 해도, 타인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긴 오판은 한 사람의 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 지점에서 ‘죄’는 법적 범주를 넘어 도덕적 책임의 언어로 떠오른다.


2. 의도와 결과 사이

 브라이오니의 잘못은 악의가 아니라 상상력의 오용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선한 의도도 상처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상처는 판결과 무관하게 평생의 책임을 요구한다. 소설은 “의도가 선하면 무죄인가?”라는 안일함을 거부한다.


3. 속죄의 한계

 브라이오니는 평생 글로 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피해자가 그 글을 읽을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속죄가 가해자 중심의 자기 구원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피해자의 회복과 동의라는 타자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설은 그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4. 증언의 윤리

 한 사람의 말, 한 줄의 문장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본 것을 말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상처 앞에서 힘을 잃는다. 말의 권력과 무게를 자각하지 못한 증언은 때로 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 상처를 주면 그것도 죄인가? 소설은 사실상 “그렇다”고 답한다. 법이 포착하지 못해도 상처의 실재는 죄책을 낳는다. 그렇다면 속죄는 무엇인가. 브라이오니는 글을 쓴다. 글은 기억을 정리하고, 잘못을 고백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요청한다. 그러나 속죄가 기억의 재구성에 머무를 때, 그것은 피해자의 삶에 무엇을 돌려주는가?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이고, 회복은 당사자의 시간 위에서만 일어난다. 가해자의 서사는 그 문 앞에 서서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법 앞에서는 무죄일지 몰라도, 관계의 파문 속에서는 누구든 죄인이 될 수 있다. 그 자각은 우리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말하고, 늦게 단정하고, 먼저 경청하는 삶으로 이끄는 이정표다. 속죄는 완전한 되돌림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멈추고 수선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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