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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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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4,605회 작성일 13-09-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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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우리나라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연령대별 자살률 중 80대(연령)의 자살률이 123.3명(10만명 당)으로 24.4명(10만명 당)인 20대에 비하면 5배가 넘는 수치이다. 비록 한국의 통계에 국한되었지만 세계 자살률 추이도 이와 거의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제적으로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고령화 인구들의 자살률 수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의욕을 이전보다 훨씬 더 쉽게 버리고 만다는 것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히키코모리 족의 증가와 같이 현대에 들어 새롭게 생겨나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 현대인들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가 ‘정신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빅터 프랭클은 이러한 정신적인 질병들에 대한 새로운 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한 사람으로, 현대 정신 치료법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군에 포로로 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살아는 있지만 죽음이라는 운명에 놓인 사람들의 본질적 내면을 직접 보고 느끼는 과정에서 로고테라피의 기틀을 마련한다. 또, 그는 인간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은 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식에 대한 욕망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사랑하는 부모와 처, 그리고 자식과 함께 수용소에 끌려오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그들은 가스실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두 갈래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미 그들의 운명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신체적으로 허약하거나 병이 들어 강제 노동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그 운명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빵 한조각, 스프 한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하며 강제 노동에 혹사당하며 감시병들의 채찍과 총개머리판의 폭력앞에 무력한 나날들을 보낸다.


 

수용소에 있는 기간 동안 병들거나 다쳐서 강제 노동을 할 기력을 잃은 사람들이 가스실로 이송되고, 전염병이 돌아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죽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큰 의미조차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수감자들은 죽음의 운명 아래에서 같은 공포, 같은 노동, 같은 삶을 살지만 그들에겐 동질감이 아닌 적의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심지어 같은 수용자들 내에서도 카포라는 수용자 우두머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나치 감시병들보다 더욱 포악하고 무자비한 통치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저자는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본질을 직접 마주하게 되고, 그 본질이 지배하는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강제 노동을 하며 참고 견디거나 혹은 수용소를 둘러싼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지거나. 어차피 강제 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가스실로 보내질 운명인 그들에게 자살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실존적 질문을 작가는 가지게 된다. 존재해야할 의미가 없는 그들에게 자살이야 말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수용소에서 어느 날 아침 저자는 상상속에 빠져든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사랑하는 어린 아내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나마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문득 그는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고, 언젠가 반드시 그녀와 재회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소망의 크기가 자살에 대한 욕망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상상의 대화로 인해 그는 희망조차 없는 수용소에서 살아가게끔 해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자살률이 증가하고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의지와 목적 자체를 읽어버리는 듯한 모습이 증가하는 것은 곧 이 사회가 점점 거대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존재 이유가 말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아낸 저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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