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또라이 제로 조직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4,756회 작성일 13-10-02 17:06

본문

어느 유머사이트에서 조직 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글을 보았다. 팀에 문제아가 있어 팀을 옮기면 거기에도 역시 문제아가 있고, 문제아가 조직을 옮기거나 갱생하면 또 다른 문제아가 생기며 주변에 아무런 문제아도 없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자신이 조직 내 문제아임을 깨달으라는 다소 냉소적인 유머였다. 스탠포드 심리학과 교수인 Bob Sutton는 저서 <또라이 제로 조직> (원서: The No Asshole Rule)에서 조직 내의 소위 문제아라 불리며 조직 내 인간관계를 해치는 이를 또라이(asshole)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이 배제되어야 인재와 조직 모두가 산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asshole’이라는 거친 표현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를 asshole이라고 자책하기 때문인데, jerk, bully, tyrant 와 같이 괴짜를 지칭하는 완곡한 표현 방법들이 있음에도 비속어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asshole’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아들에 대한 저자의 강경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이 ‘또라이’인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24개의 체크 리스트를 제공하는데, 해당되는 사항이 많을수록 조직에 비협조적/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15개 이상 해당되면 인간관계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또라이’는 스스로 되지 말아야하며, 뽑지 말아야 하고, 있다면 해고해야 하는 백해무익한 존재이다. 이들로 인해 형성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관계는 긍정적이고 밝은 관계보다 몇 배는 더 영향력 있고, 쉽게 해소되지 않으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인간관계는 집단의 인간관계로 발전하고, 이는 곧 조직의 성향을 대변하기 때문에 소수의 ‘또라이’라 할지라도 조직에 끼치는 해악은 절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썩은 사과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진단 항목들을 읽다보면 해당되는 사항이 많은 경우 문제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자가 진단 문항들은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해당 항목에 대한 상태를 ‘조금 그렇다’ 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라는 식의 단계적인 답변을 선택할 수 없고 ‘예’와 ‘아니오’ 라는 이분적인 표현을 통해 진단자의 성향이 극단으로 치닫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동료는 경쟁자다.”나 “사다리를 오르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밀치는 것이다.”와 같은 질문에 선뜻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달리 보면 이러한 해당되는 사람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게, 진단 항목 가운데는 표현을 조금만 수정하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특히 책임자로서 강요받을 수 있는 행동 양식도 들어 있다. 크고 작은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만 할 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착해서 잘 나가는 회사’의 대표 주자로 구글을 들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구글에 비해 조직원들을 구속한다고 생각되는 경쟁사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낮은 실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조직의 문화가 구성원들의 속성을 어느 정도 대변할 수는 있으나, 모든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구글처럼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이루지 않는다고 ‘또라이’들로 인한 억압된 기업 문화를 갖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인 사람들이 모여 경쟁적인 기업 문화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은 앞서 언급했던 이분법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진단 항목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해당 저자가 얘기하는 ‘또라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을 조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면 대개 무관심한 편이고, 최대한 대인 또는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경우 이러한 행동은 자칫 외부 자극에 대해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동들이 평소에는 순종적이고 친화력 있어 보일 수 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조직 또는 동료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타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경쟁이 강조되는 현대에서 지나친 선善은 악의 없는 선한 ‘또라이’로 나타날 수 있다.


 


저자는 ‘또라이’가 갖는 유일한 긍정적인 측면은 소수의 문제아로 인해 다수의 결속력이 강화된다는 점이라고 언급한다. 조직 내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저자가 주장하는 극단적인 ‘또라이’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또라이’와 그에 상반되는 존재인 ‘좋은 사람’은 모두 조직의 발전과 유지 측면에서 양날의 검과 같기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