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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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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우철
댓글 0건 조회 4,969회 작성일 13-10-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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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우리나라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68운동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현실참여적 지식인. 그리고 철학을 대중의 품에 안긴 사나이라는 애칭을 지닌 사람. 이 모든 것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장폴 사르트르를 일컫는 말들이다.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사르트르의 대표서적중 하나로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이다. 1905년에 태어난 장 폴 사르트르는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다. 향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그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지만, 1년 뒤 탈옥하여 저항적 문필운동을 주도한다. 그 후 전후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관심을 표명한다. 그는 1964년 작품 “말” 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사르트르를 제외하고는 20세기의 문학과 철학, 사상사를 논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실존주의 문학의 창시자이자 참여문학의 열렬한 작가이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철학을 비롯한 지성사에 한 획을 긋고 20세기 지식인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에게 있어 실존주의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존주의란 무엇일까. 20세기 실존주의의 등장배경은 먼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히틀러와 핵폭탄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600 만명을 학살했고, 미군이 떨어뜨린 핵폭탄은 히로시마에 있던 20 만명의 일본인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5000 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2차 세계 대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엄청난 회의를 가져왔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통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있었던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라는 실존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실존주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으로, 대상을 본질과 존재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의자라는 물건이 가지는 “존재”는 의자 그 자체인데, 의자의 “본질”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가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의자의 다리가 부러졌다면, 우리는 그 “앉을 수 없게 된 의자”를 버릴 것이다. 즉, 물건은 본질이 존재에 앞서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못나거나 잘생기거나, 부모님에게는 눈에 넣어도 똑같이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이다. 부모는 못나거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니까 말이다. 즉, 인간은 인간을 본질이 아닌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가 남긴 유명한 말인,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재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 스스로 자신을 “기투”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기투란 꾀할 기, 던질 투로서 인간이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 자신 스스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칼이나 의자와 같이 목적을 지닌 물건과는 달리 어떠한 의도나 이유 없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이며, 그러기에 자신 앞에 펼쳐진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투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들게 된 생각은 “나는 무슨 이유로 존재하고 있고, 그 이유는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질문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항상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앉혀야하는 본질로서만 살아가는 의자처럼 말이다. 인간의 존재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기에,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끊임없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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