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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주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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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5,753회 작성일 14-04-2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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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주말’ (2008)



 

지난 루이스 스티븐슨의 ‘마크하임’을 읽은 이후로 항상 머리 속 구석에는 착하고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아니 정말 나쁜 사람 혹은 완전히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있을 수 있을지, 만약 나의 가까운 사람이 법률에 따른 범죄자가 되었다고 하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와 같은 생각이 자주 머리 속에 맴돈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접하게 되었다. ‘주말’이라는 이름의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라는 이름을 잘 아는 사람 없을 수 있지만 ‘책 읽어주는 남자’는 잘 알려져있는데 바로 그 책의 저자이다. 저자는 원래 독일의 법학자로서, 판사와 법학 교수로 재직하였었고 ‘책 읽어주는 남자’이후에 13년이 지나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 소설 ‘주말’은 급진적 테러리스트로서 몇 차례의 살인을 감행하고 20여 년간 수감되었다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외르크가 누나의 안내로 교외 별장에서 외르크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해 젊은 시절 함께 혁명을 꿈꾸던 친구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주말 - 금, 토, 일요일-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한때 같은 목표와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20여년이 지난 후에 만났을 때는 전혀 다른 입장이 되어 있으며, 이제 사업가, 변호사, 저널리스트, 교사, 사제 등이 되어 각자의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속물근성으로 은근히 친구들의 무시를 받았으나 이제는 성공한 CEO가 된 울리히, 외르크의 누나인 크리스티아네의 옛 연인이자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헤너, 젊은 시절 과격한 혁명에 몸담았으나 이제는 모든 이들의 평화를 구하는 목사가 된 카린, 20여 년 전 혁명 중 실종된 친구의 흔적을 쫓는 교사 일제 등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 의리, 과거에 대한 향수, 혹은 호기심 - 별장을 찾아왔지만 서로 그 자리를 불편해한다. 20여 년 전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헤너 라고 믿는 외르크와, 과거 자신들이 가담했던 혁명의 폭력성에 회의를 품고 외르크가 저지른 살인의 정당성을 용납하지 못하는 친구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결국 이들 간의 날 선 대화가 오가는 사이 서로의 속마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학창 시절 외르크에게 열등감을 느껴왔던 울리히는 출소한 외르크에게 비꼬면서 자기 회사의 낮은 일자리를 제안하고, 20여년 전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크리스티아네에게 이별을 통고받았던 헤너는 이제 그 이유를 캐내려 하며, 모두의 평화와 화합을 구하는 목사 카린은 외르크의 출현으로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자신의 폭력적인 과거가 떠올라 혼란스러워 한다. 여기에 전설적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에 매혹되어 외르크를 유혹해보려는 울리히의 철부지 딸과, 외르크를 자신의 급진적 좌파 단체로 영입해 새로운 혁명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열혈 청년이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수수께끼 같은 낯선 청년의 방문으로 마침내 오랜 세월 숨겨왔던 서로의 비밀들이 폭발한다.


 

이 책은 죄와 벌, 법과 정의, 그 사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책이다.  외르크가 20여 년 만에 육중한 감옥 철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 후 외르크를 받아들여야 하는 주변인들 사이의 ‘뜻밖의 가능성과 긴장감으로 가득 찬’ 관계를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 보인다. 그러면서 살인을 저지른 이 테러리스트가 우리의 가족이자 연인이자 친구일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야 하는지 그 복잡한 도덕적 고민 속에 빠져들도록 한다. 특히 저자는 소설 속의 얀의 이야기를 통해 외르크의 내면과 테러리즘에 대해 보여주며, 테러리스트는 왜 테러를 하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을 하는지, 사람을 죽인 후 어떤 감정에 빠지는 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테러리스트 주인공 외르크와 전작 ‘책 읽어주는 사람’의 여주인공 한나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나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1970년대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던 극좌파 무장단체 적군파'의 테러리스트 외르크로 치환되고, 외르크는 한나처럼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출소하여 가족과 친구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즉, ‘책 읽어주는 남자’의 결과가 바뀌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 저자의 못다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테러리즘과 시위를 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역시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과거가 있고, 그 당시의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사람들은 기득권의 세대가 되었으며, 마치 소설 속의 친구들과 같이 자신의 과거에 했던 행동들과 너무 많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끝으로 책에서 참 마음 깊게 와 닿은 외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이 소설을 추천해본다.



 

‘감옥에서 가장 힘든 게 뭔지 알고 싶다고 했나? 내 삶이 여기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있다는 느낌. 내가 그 삶에서 단절되어 썩어가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삶에 대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그 삶의 가치가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 그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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