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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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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5,703회 작성일 13-08-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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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최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주말에 보게 되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그리고 그 안에서 칸칸이 주어진 일들을 하며 밖의 세상을 잊어버린 내용이다. 각 칸마다 역할이 있고, 기차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좋던 싫던 혹은 정당하던 하지 않던 살아남기 위해 맹목적으로 역할을 하며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에 담고 싶었던 철학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해석하지는 못하겠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역할을 짊어지게 되고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 자신을 잃어가면서 일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우리 자신을 잃고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철학이 필요한 시간’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페르소나’ 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로마 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이다. 훌륭한 배우는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맡은 배역을 충실히 수행해야한다. 연기하는 날, 자신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거나 혹은 낮에 복권에 당첨되었을 수도 있지만, 비극적인 사건에 동요되거나 행운에 취해 배역을 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사실은 일을 하지 않을 때조차도 자신의 기분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한다. 아주 오랫동안 사귀었고 결혼까지 꿈꾸었던 연인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는 출근하여 상사와 동료들과 아침인사를 나눌 것이고, 거래처 사람에게는 미소까지 보일 수 있을 것 이다. 삶은 마치 연극같아서, 우리는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주 오래전 인간의 삶이란 연극에 불과하다는 통찰에 이른 철학자 한 명을 소개 한다. 바로 에픽테토스 이다.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인물인 연극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연극이 짧기를 바란다면 짧을 것이고, 만일 길기를 바란다면 길 것이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 구실조차도 도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절름발이를, 공직 관리를, 평범한 사람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에게 ‘작가’는 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에 따르면 신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연기해야할 배역들을 모두 정했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신이 종교적이라서 불편하다면, 사회로 이해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특정한 사회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고 따라서 특정한 사회 속에 던져져 살아가도록 운명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좋던 싫던 어떤 배역을 맡도록 강제한다. 예를 들어 결혼해서 시부모를 만났을 때, 우리는 시부모와의 관계에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써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가면을 쓰고서는 살 수가 없다. 외롭고 지치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쓰고 있는 페르소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페르소나가 자신의 맨얼굴이라고 믿는 삶을 살게 된다면, 맨얼굴은 페르소나에 가려 망가져 버릴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책 속의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맨얼굴을 가꾸는 방법에 대해 넌지시 알려준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엥케이리디온

 


여기서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전자가 우리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페르소나와 관련된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삶이 연극판처럼 진행된다는 사실을 통찰했지만, 연극을 맡은 배역 이면에 있는 맨얼굴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했다. 만약, 우리가 믿음, 충동, 욕구, 혐오와 같이 우리의 본질적인 요소를 가꾸고 제어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고, 더욱이 망가진 맨얼굴이 보여 질 까봐 페르소나에 집착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연기를 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쩔 수 없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면 슬프고 외롭겠지만, 나에게 달려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가꾸면 언젠 가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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