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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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가 들려주는 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
현대 노동자들은 대개 육체노동자라기보다는 정신노동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로 출근 후 퇴근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컴퓨터 앞에 앉아 정신노동을 한다. 그나마 탈출구로 작용을 해야 하는 식사 시간도 정신노동의 연속선상에 있을 경우가 많다. 식사 시간에는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파가 나뉘기도 하며 서로를 음해하는 세력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고 일의 효율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이러한 악의적 인간관계의 발생원인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다 답은 화라고 결론지었다.
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고대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화는 순간의 광기이며 앙갚음하는 자신마저 나락으로 빠뜨려도 철저한 복수를 갈망하는 정제되지 않은 원초적 본능이다. 자신마저 나락으로 빠뜨린다는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깊이 생각해보자.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며 화를 무조건적으로 경계해야하며 없애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책에 표면적으로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 읽다보면 여러 군데에서 세네카의 의견과 충돌하는 또 다른 철학자의 의견이 나온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격정이나 화를 적절히 이용하면 무기 구실을 한다고 하며 화의 활용에 대한 견해를 보였다. 이것은 화는 악이며 따라서 악의 근본부터 없애야 한다는 세네카와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나는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화를 적절히 이용하여 훈계를 할 수 있고, 자기방어 및 당당함 유지 등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세네카의 의견에 깊이 매료되었다. 화는 기반이 약하여 쉽게 무너지고 오랫동안 존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후에는 창피함과 후회만이 남기 때문이다.
다른 격정들(욕정, 두려움, 무모함 등)도 눈에 보이지만, 화는 자신을 드러낸다. 이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비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화를 낼 때의 사람, 어떠한 통제에도 굴복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근시안이 돼버리는 그 더러운 모습이 사람 본연의 모습이라니……. 안타깝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섭다. 그러한 본성을 갖고 마치 자기는 아닌 양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은 21C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화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 것을 또 한 차례 나타내는 것이 있다. 화는 만일 진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 같으면 진실 자체에 점점 더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진실로 인정되는 사실에 나의 의견이 다를 때 인간은 화를 낸다. 그리고 그 분노는 나의 의견과 사실과의 괴리가 만드는 골의 깊이가 깊을수록 커지며 마침내 진실 자체에 화를 내고 그 진실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번진다. 이 얼마나 무모한가. 화를 낼수록 화를 낸 장본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그 사람의 화는 커질 대로 커져 복구 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전형적인 악순환으로 이를 끊는 방법에는 애초에 발생된 화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 또한 화남을 빙자하여 남에게 질책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질책이란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가하는 형식을 빌려 잘못을 고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질책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의 화를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질책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면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이 질책이 정당함을 얻었다고 간주하고 더욱 더 화를 몰아친다. 질책이 화를 품지 않을 때에는 질책 받는 자가 인정하지만 화를 품기 시작하면 질책 받는 자도 또한 화를 품게 되며 질책을 받는 이유를 잊게 되고 마지막에는 화만 남게 된다. 이러한 것의 유명한 일화로 소크라테스가 노예를 다루는 방법이 책에 나와 있다. 그는 노예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내가 지금 화가 나기 때문에 너를 매질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말을 두고 떠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책에는 몇 군데서 아 질문에 대한 답변도 서술해 놓았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기 싫다면 매사에 시시콜콜 파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상황이든 해석하기에 따라 부당한 피해처럼 보일 수 있기에 더러는 무시하고 더러는 웃어넘기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용서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과 더불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위의 소크라테스가 한 말과 관련이 있다.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그것을 늦추는 것이다.
화는 정신의 위대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것은 마치 무모함이 용기와, 오만이 자신감과, 괴팍함이 단호함과 동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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