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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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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우철
댓글 0건 조회 6,769회 작성일 13-08-06 17:48

본문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에 대한 좋은 시작을 이야기 할 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잘 시작한 것은 이미 반을 끝낸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명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활 속의 속담처럼 쓰이는 그의 명언들보다 그가 남긴 “중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도 그 누구보다 인간의 행복 추구 방법에 대하여 평생을 고민한 끝에 그가 찾은 해답이 바로 “중용의 덕” 이니까 말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당대 윤리적 견해들 전체와 벌인 싸움의 기록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식주의적 통찰”이 윤리적 사유에서 도달한 정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아들인 니코마코스에게 주는 형식으로 되어있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 동안 참된 앎, 진리, 그리고 인간의 행복과 같은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것에 대해 고찰하였으며, 그의 철학은 스승 플라톤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철학의 상식적 감각은 책의 첫 장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그는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바로,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무엇이 행복을 구성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의 철학은 철저하게 목적론적 존재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에 있어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레테 라고 하는 덕 (virtue)을 제시한다. 그는 덕이란 그 존재에게 주어진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펜이 존재하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함이며 펜은 그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기에 자신의 존재의의를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발이 빠른 것은 발의 덕이고, 토지가 비옥한 것은 토지의 덕인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모두 주어진 기능을 잘 발휘할 때 그 행복의 목적이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덕, 인간에게 주어진 기능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가진 기능, “이성적 사유”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구별짓는 기능이라고 하며, 이 이성적 사유를 극대화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최고의 덕”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진리추구와 명상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 안에는 덕이 존재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지녀야할 덕으로서 중용을 강조하였다. 중용은 양극단을 배제한 중간의 덕으로서, “무모”와 “비겁”의 중간에 존재하는 윤리적 탁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중용의 덕을 추구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하며, 중용은 부족함의 악덕과 지나침의 악덕 사이에 위치하며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중용을 발견하기가 언제나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중용의 덕을 깨우칠 수 있을까. 그는 중용의 덕과 우리의 품성을 일치시키라고 말한다.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바꾸듯이, 우리의 행동 또한 생각을 바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돈과 관련된 덕 중에 중용의 덕으로 “관후”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써야할 것 이상으로 쓰는 낭비와 마땅히 써야 할 것 이하로 쓰는 인색함 사이에서 추구해야하는 중용인 것이다. 우리가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돕거나 불우이웃에게 기부를 하는 것은 관후의 덕인 것이다. 우리는 늘 이러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지키지는 못한다. 이러한 중용의 어려움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품성과 중용을 일치시키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용이란 그 무엇보다 지키기 힘든 신념이며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차가운 것과 따듯한 것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 대단한 용기와 감내가 필요한 덕이었다. 중용의 길을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 못지않게 용감하며, 아마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용감해지려고 해야 할 것이다. 비겁한 관대함보다는 스스로 고귀한 덕을 택해야만 하니까 말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윤리학의 창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을 살려는 사람은 이처럼 때때로 두려운 일에도 뛰어들어야 하며, 괴로운 일도 자청해야할 때가 있음을 강조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삶, 그것은 홀로 고고하게 사는 어느 명상가의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구한 진리를 실천하며 사회적 중용을 행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전하고 싶어 했던 중용의 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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