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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하임 vs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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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258회 작성일 14-04-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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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하임 vs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86)

출퇴근 길에 ebs 라디오를 틀어놓고 운전을 하는데, 여기서 어학 이외에도 다양한 책이나 음악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어서 운전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꽤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기도 하였다. 게다가 신간이나 고전 혹은 영미문학 등의 책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어느 날 들었던 내용이 머리 속 깊이 남아 계속 맴돌아, 뒤에 따로 찾아 보게 된 소설이 있었다.
‘날 그런 존재로 생각하는 거요? 평생 죄만 짓다가 마지막 순간에 천국에 몰래 숨어들어 가려는 파렴치한 정도로? 생각만 해도 역겹군. 결국 인간에 대해 아는 게 그것뿐인 거요? 아니면 이 피 묻은 손 때문에 날 그런 저열한 인간으로 여기는 거요? 살인죄가 선의 샘을 말릴 만큼 그렇게 불경한 죄란 말이오?’
‘내 내면엔 선과 악이 동시에 양쪽 방향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소. 난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다 사랑하오.’
‘내 악한 심성만이 내 삶을 이끌고, 내 미덕은 무기력하게 물러나 있다고? 쓸모없는 통나무처럼? 천만에. 선 역시 내 행동의 원천이란 말이오’
이 대사들이 내가 이 책을 찾게 된 이유였다.

이 소설은 항해와 모험의 대표작 ‘보물섬’과 여러 영화 및 공연 등으로 널리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유명한 작품들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숨겨진 단편, ‘마크하임’이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 날에 돈을 훔치기 위해 자주 찾는 골동품 상점에서 주인을 단검으로 살해한 주인공 마크하임이 자신의 살인에 대해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는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뒤에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의 서두에는 무엇 때문에 살해를 하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사실 내용의 흐름상 그 이유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마크하임은 주인을 살해한 뒤 상점 안에서 누군가 자기의 살해 장면을 보거나 혹은 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골동품 상점 안에서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 창 밖의 빗소리, 촛불로 인한 그림자들의 흔들림 등 모든 것들이 자신을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상점 안에서 누군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존재는 문을 열고 들어와 마크하임에게 ‘나를 불렀는가?’ 라고 쾌활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가 무엇인지 본문 속에서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본문에서는 ‘방문자’ 또는 ‘그 존재’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 땅의 존재도, 하늘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는 점에서 그 방문자는 아마 마크하임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찾아 온 ‘악마’ 혹은 자신의 내부에 있던 악한 마음의 인격화일 것이다. 방문자는 곧 하녀가 이곳으로 오기 때문에 마크하임의 살인이 들킬 것이니 자기가 돈의 위치도 알려주고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자신의 살인에 괴로워하던 마크하임은 그자가 자신에게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르기를 권하자 그자에게 끌려가지 않고 더 이상 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착한 하녀에게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여 자수를 하게 된다.

마크하임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나타나는 악마 혹은 마크하임 자신의 어두운 내면에 의해 또 다른, 더욱 깊은 악행을 하도록 유혹 받지만 그를 통해 자신의 본성들 깨닫게 되는데, 위의 대사들은 마크하임이 그 자과 나누던 이야기 중 일부이다. 많은 표현들이 하나같이 너무 인상 깊게 느껴졌는데, 위의 대사들은 특히나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부분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다른 모든 선행들을 뒤로하고 악행으로 인해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만약 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면 그가 행했던 이전의 모든 선행은 의미가 없이 오직 ‘살인자’로서만 낙인이 찍혀버려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이 된다. 특히 최근의 이슈 중 하나인 학력 위조 등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데, 많은 성취와 업적 등이 단 한번의 과오 혹은 범죄로 인해 폄하되거나 성공한 사람에서 악행을 저지른 부도덕한 사람으로 비난 받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시 훌륭한 시장으로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빵을 훔친 범죄가 자신을 결국 범법자로만 여겨지도록 만들어버린다.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행한 수 많은 행동 중에서 악행만을 평가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성을 판단해버리기 때문에 더욱 많은 선행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하나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사회의 룰(법)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종교적인 해석은 뒤로하고 현실적인 상황을 보았을 때 과연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을 더욱 하게 만드는 대사들이다.

마크하임의 시간적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점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마크하임과 같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크리스마스의 은총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해준다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돈을 뒤지러 가는 길에 들려오는 교회의 찬송가, 그가 회상하는 목사님의 의젖한 목소리, 교회에 세겨져 있던 십계명, 그리고 이러한 회상들로부터 짓는 마크하임의 미소 등은 살인 후의 죄의식으로 쫓기는 심정에서도 크리스마스가 그에게 축복을 주어서 구원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심정은 내부에 존재하는 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보여져, 돈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는 악마에게 오히려 신의 은총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하녀가 상점에 도착한 마지막 상황에서 마크하임은 악마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친다.
‘내가 악행을 저지를 운명이라 해도, 자유의 문은 아직 남아 있소. ... 비록 선에 대한 사랑이야 결실을 못 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소. 중요한 건 내가 아직 악을 증오한다는 사실이니까. 당신이야 크게 실망하겠지만, 난 바로 그 사실로부터 힘과 용기를 끌어낼 참이오.’
자신이 비록 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고, 그 마음에서 힘을 얻어 담담히 자신의 과오 투성이인 과거를 회상하며 유혹에 흔들림 없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자 악마는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인간 내부의 심리적인 묘사, 특히 선과 악의 투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흡사한 면이 아주 많다. 특히 저자가 태어나던 19세기에는 현실이란 대조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가진 선한자와 악한자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널리 퍼져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이 두 소설과 같은 이원론적인 심리 묘사에 대한 책을 냈는데, 저자의 양심의 가책을 통한 사회 질서의 회복을 원하는 보수주의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두 소설은 자신의 내부의 악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경우 자신의 내부의 악인, 하이드 씨를 지키거나 방치하고 혹은 즐기기도 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반면, 마크하임에서는 자신의 내부의 악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미워하고 뉘우쳐 구원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소설 모두 등장하는 거울을 통해서 또 다시 볼 수 있다. 마크 하임이 들어서는 골동품 상점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촛불을 켜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마크하임은 살해 후 먼저 거울을 통해 자신 내부의 어두운 면(자신)을 대하고 놀라게 된다. 즉,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발견하고 놀라며 불안해한다. 그런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등장하는 거울은 자신의 악한 모습인 하이드의 모습을 궁금해하고 관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 두 소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비교하며 읽어보기 너무 좋았다고 생각된다.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은 이 소설에서 효과적인 상징들을 통해서 인간 내부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선과 악, 그들의 투쟁, 크리스마스의 은총을 통한 선의 승리 등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 후에 마크하임이 느끼는 불안함과 죄책감의 심정을 표현한 방식들, 악마와의 대화 등은 몇 번이라도 다시 읽게끔 절묘하게 쓰였다. 특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고딕 소설과 함께 읽고 비교해보면 두 소설의 차이점을 많이 느껴질 수 있어서 즐거움이 배가 된다. 한번 읽어보면 오랜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너무 유익한 시간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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