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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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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5,722회 작성일 13-05-0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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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대한 명의로 알려져 있는 화타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두 명의 형님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의원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위나라의 임금이 화타에게 물었다. “그대 삼형제 중 누가 병을 제일 잘 치료하는가?” 화타가 답하기를. “큰 형님은 어떤 이가 아픔을 느끼기 이전에 얼굴빛을 보고 그에게 병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 병의 원인을 미리 제거하는 분이고 둘째 형님은 상대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병을 알아보고 치료해주는 분이며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가 되어야 비로소 병을 돌봅니다. 하여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의 그러한 의술을 보고 저를 명의로 일컫지만 집안에서는 세 명의 의원 중 저를 가장 하수로 봅니다.”

앞서의 고대 화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며 인간이 무병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전인적 생명을 먼저 잘 보전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양생론의 핵심을 잘 간파할 수 있다. 의학서적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허준의 ‘동의보감’ 또한 이러한 양생론의 입장에서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고전평론가인 고미숙이 쓴 <몸과 인문학>은 동의보감이야말로 단순한 의학서를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와 비전을 제시해주는 위대한 바이블이 될 수 있음을 단언한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접하지 않았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보감이라는 책이 질병과 약재, 처방전이 담긴 방대한 의학서적의 표본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우리에게 다시 펼쳐준 동의보감은 더 이상 단순히 한의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삶과 인생에 대한 독창적인 방식의 기준을 제시하는 철학서였다.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거기(동의보감)에는 몸과 생명, 그리고 자연과 우주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고 얘기한다.

동의보감에서 드러나는 가장 독특한 시선은 살아 있는 한 아프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구는 태초부터 23.5도 기울어져 있고 태양이 지나다니는 황도 역시 삐뚤삐뚤 타원형이며 우리의 몸 또한 많은 모순과 왜곡을 안고 태어났으므로 이 간극만큼 아픔과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서는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임에 불과함을 역설한다. 같은 이치로 치유란 병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병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또 그 병을 지침 삼아 삶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아가 몸과 인문학은 이러한 동의보감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 교육, 가족, 정치, 경제 등의 현상 등을 반영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실제 동의보감은 우리의 몸을 돌아보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생명의 한 부분이고 생명의 탄생은 곧 우주의 생성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도 우주의 축소판임과 동시에 우리 몸과 그 운행 원리가 굉장히 많이 닮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여 몸과 사회와 우주의 이치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결국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도 곧 우리 몸에 병이 드는 것처럼 우주 운행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부분들이 우리 몸처럼 응혈이 쌓이고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현상과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얘기하고자 하는 답은 명확해진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삶의 비전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 지고 우울증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왜 다시금 우리의 몸에 주목해야 하는 지를. 그것은 우리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이며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음양오행론 이라는 우주적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인 소외와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문화적 유산인 동의보감은 이렇게 다시 저자 고미숙의 명쾌한 필력으로 되살아났다. 그러한 명쾌함 뒤에는 지혜와 앎에 대한 저자의 의지와 치열한 글쓰기의 과정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배움의 한 갈래로 동의보감을 만나는 것 역시 부제에서 보듯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다. 허준의 편찬 의도 역시 거기에 있다. “환자가 이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이 환하게 밝혀질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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