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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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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5,967회 작성일 14-04-2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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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으로, 39년부터 2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당시 후기 스토아 학파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세네카가 직접 집필한 ‘화에 대해서’에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가 녹아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다른 철학에 비해 마음, 행복, 돈, 화, 명예부터 노년, 죽음, 인생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인간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를 주로 다룬다. 세네카는 ‘화에 대해서’를 통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까닭은 올바른 이성이고 감정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스토아 주의를 역설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책이 쓰여진 시대의 배경을 살펴보면 ‘화에 대하여’에 내재된 세네카의 인간적 고뇌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세네카는 로마의 제 5대 황제 네로가 열 두살이었을 시절부터 그의 가정교사이자 스승의 역할을 맡았다. 이후 54년 네로가 로마의 황제가 된 후에도 10년간 그의 곁에서 정치적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네로의 집권 초기에 절제 있고 책임 있는 정부를 만드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후 네로가 두 명의 아내, 이복형제, 그리고 어머니마저 살해하는 등 광기와 공포의 정치를 펼치게 되며, 그의 정치적 자문인 세네카는 큰 고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네로 암살 계획인 <피소의 음모>에 동참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데, 이 때 네로는 정황과 증거를 살펴보지도 않고 세네카에게 즉시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세네카는 아무런 저항 없이 스스로 혈관을 끊고 독약을 마시며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은 광기와 공포가 지배하던 격동의 시대를 살며 세네카 자신이 느낀 현실적인 문제와 철학적 고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부터 화가 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를 어떻게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역설하고 있다.

세네카는 ‘화’를 인간의 덕에 반하는 ‘격정’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삶에 무해한 것으로 간주한다. 상해를 입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가 나는 것 조차도 인간의 이성이 불안정하고 충분히 훈련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분별력을 잃고 자신의 태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며, 인간적 유대 따위는 아랑곳 없이 스스로 시작한 일이 무엇이든 오로지 그것에만 눈이 멀어 이성과 충고에는 귀를 닫게 되어 결국에는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되므로 화는 그 자체로 ‘악덕’으로 규정한다. 특히, ‘화’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는가에 대한 의견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화에는 어떠한 유익함도 없으며, 미덕은 악덕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는 안되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한다. 공격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 때면, 미덕은 화를 내듯 폭발하지 않고 자연스레 솟아나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흥분하고 원래의 평정심으로 돌아가지만, 화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격정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네카가 갖는 화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다.

네로 황제 곁에서 정치적 자문 역할을 하며, 그 당대의 광기와 공포를 가장 가까이서 본 것 역시 세네카 자신이었을 것이다. 광기는 화가 그 원인이 되고, 공포는 화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세네카가 화 자체를 악덕으로 정의하고 통제할 수 없다고 본 것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게끔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잘 정립된 법 체제와 평등 사상에 의해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행동 범위에는 제한이 존재한다. 즉, 어떤 한 사람이 매우 화가 나더라도 다른 사람 혹은 다수에게 해를 가하기에는 그 자신에게 돌아오는 제재가 크다. 하지만 세네카가 있던 당대의 상황은 절대 권력자가 존재하고 그 존재가 화에 사로잡혔을 때 제재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 때문에, 화로 인한 영향이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따라서 세네카는 ‘화가 가져오는 결과’를 극한까지 경험했고, 그 만큼 화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현대에 화로 인한 인간의 행동 반경이 줄어들게 되었다면, 화를 내게끔 하는 원인은 어떨까? 한 인간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끔 하는 원인은 너무나도 많아 이를 양적으로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가 나는 데에는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날 때는 그 일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는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욕심’이 화를 나게끔 하는 데에 일조한다면, ‘욕심’은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세네카가 있었던 고대 로마 시대나 현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화를 내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현대에 인간이 화를 낼 수 있는 정도가 줄어 듦으로써 화에 대한 경계의식이 줄어든 반면 인간에게 화가 나는 정도가 같다면, 이는 과거에 비해 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의 정도가 커진 것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총기난사 사건이나 연쇄살인사건과 같은 경우도 화의 극단적인 분출로 인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잠재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화의 정도가 크다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해소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되게끔 만든다.

너무나 놀랍게도 무려 2천년 전에 세네카는 현대 시대의 우리들과 동일한 생각을 한 듯 하다.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그는 노력을 통해 화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것,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릴 것, 화를 유예시킬 것, 화를 내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는 것, 나보다 더 많이 가졌거나 앞서가는 사람들로 신에게 화를 내지 말 것, 화는 화낸 사람에게 반드시 돌아 온다는 것 등등 여러 가지를 제시해 준다. 무엇보다 그는 화를 내며 보내기엔 우리들의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언급했는데,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훌륭한 화 억제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살면서,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할 것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만약 지금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서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것이 무엇이던지 간에 적어도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화가 나려는 순간 이 교훈을 떠올린다면 한 순간에 화가 사라지고, 그것이 무엇이던지, 화를 내는 것 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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