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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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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우철
댓글 0건 조회 6,239회 작성일 14-04-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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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Henry George)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인류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 모든 사회과학을 다 통틀어 하나를 꼽는다고 한다면 “인간의 빈곤”이 아닐까 한다. 인간사회는 진보했지만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으로 죽어갈까? 사람들이 빈곤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또 있을까? 그 동안 인류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통해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조차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고질적인 빈곤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답을 시도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고도 열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헨리 조지일 것이다.

헨리 조지 (Henry George)는 남북전쟁 후 복구사업이 한 장이던 19세기 미국의 격변기를 보낸 사람이다. 1839년 필라델피아에서 무려 9명의 형재자매가 복작거리는 가난한 출판 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성공회 학교를 다녔지만 종교적 훈육에 대한 거부감과 가난 때문에 14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출판사 식자공, 외항선 선원, 금광 광부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숱한 고생을 한 끝에 기자를 거쳐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이브닝 포스트 라는 신문사를 차리게 된다. 이후 이름이 알려지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밑바닥 생활을 해 온 그에게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바로 “인류는 진보했건만 왜 여전히 빈곤한가?” 라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40세에 이러한 문제의식에 답하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14세까지가 전부인 그의 책은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19세기에 성격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책 “진보와 빈곤”은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인류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책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조지가 고민했던 것은 “왜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도시의 노동자는 시골의 지주보다 더 가난할까?”라는 물음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답을 토지의 독점적 점유에서 찾았다. 사실 시골의 땅값이 낮다면 시골 지주의 재산은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노동력으로 하는 생산활동에는 세금이 붙는데다가, 노동자들은 벌어들인 돈의 상당량을 토지소유자와 독점사업자들에게 방값과 같은 경제적 지대로 바쳐야 한다. 게다가 토지에 대한 접근성은 제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토지 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헨리 조지는 단지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주들이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심각한 불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위한 해법으로 토지에서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게 하는 2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하나는 토지를 공유화해서 지주가 지대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되 순수하게 토지에만 세금을 매기고 그 외의 나머지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나머지란 바로 토지에 지은 건물, 심어진 수목, 다양한 시설등의 “자본”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토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생산활동이기에 그 이익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토지와 자본을 이처럼 구별하는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토지와 자본 모두를 공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토지만을 대상으로 단일세를 걷자고 했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의 가격 기능과 사유재산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마르크스와 헨리 조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 그의 사상은 19세기 영국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조지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고 이들은 개인의 노동 생산물의 소유는 인정하지만, 토지를 비롯하여 자연에서 온 것들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조지는 19세기를 살았지만, 그의 사상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들어맞는 면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평생을 회사에 헌신하며 열심히 일을 한 노동자보다 좋은 부지를 사들인 사람이 노동 없이도 큰 돈을 축적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 되어 부의 되물림을 만드는 사회가 과연 공평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집값은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붙잡고 있다. 나날이 치솟는 전세가로 인해 서민들은 대출이자에 시달리고, 88만원 세대는 월세방에 그들의 임금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생산력은 진보했건만, 우리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원인은 “토지의 독점”에 있다는 헨리 조지의 일갈은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심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자산은 대략 6,500조원 정도인데, 이 중 부동산 자산이 무려 5,000조원이 넘는다. 전체 자산의 약 77%가 부동산이라는 말이다. 선진국에서는 부동산 비율이 50%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거의 대부분 “부동산” 에다가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절망에 빠진 빈곤층은 자살로 내몰려 자살율 1위인 나라를 만들고 있으며, 빚을 지고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들은 좌절과 절망 속에 노동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지 소유로 인한 불로소득을 제한하자”라는 헨리 조지의 사상은 우리가 한번쯤은 꼭 고민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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