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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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아기. 인공수정 배아들을 만든 후 착상전 유전자검사(PGD) 등으로 검사해 이 가운데 질병 유전자가 없고 특정한 유전 형질을 지닌 정상적인 배아를 골라 탄생시킨 아기를 말한다. 단순히 사전적인 뜻을 이야기 하자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이 맞춤아기가 불치병에 걸린 형제나 자매를 치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책 “쌍둥이별”은 맞춤 아기라는 현재 사회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그리 생소하지 않은 소재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생명에 관해 심화된 생각을 이끌어 내도록 해준다. 이와 같이 가장 민감한 사항인 생명이 주축이 되어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사례도 여럿 발견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재에 대해 사회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내세우며 찬반의 갈등도 심화되어 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놨던 삶을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어긋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만약 발생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안나는 맞춤아기이다. 자연적 탄생이 아니라 인공적 수정을 통해 어떠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 이 사명은 바로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신체적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나는 맞춤아기이지만 이런 수식어 이전에 인간이기도 하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하나의 도구로 취급될 지 언정 그녀가 인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신체적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 케이트를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어렸기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의 희생에 부당성을 찾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안나의 부모는 온갖 시술로 고통 받는 안나에게 미안함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러할 목적으로 안나를 낳은 것이기 때문에 안나의 의사를 묻는 절차조차 밟지 않고 희생을 권한다. 이는 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행동을 계속해 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나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만한 나이가 되었고 신체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소송을 건다.
이 내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 할 것이다. 누가 승소를 할 것인가?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거기에 그녀는 과연 그런 권리를 내세울 자격이 있는 지까지 수 많은 논란에 휩싸 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수적인 내용을 뒤로하고 우리가 그 소송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녀가 가진 생명의 가치는 누구도 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송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다소 지나쳐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즉, 소송의 의미는 부모님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자 간절한 부탁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 책 속에서 자식과 부모는 갈등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나간다. 비록 반대의 기로에서 서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족의 사랑은 영원히 이어가고 지켜나간다. 부모라면 모든 걸 다 바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는 보편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송으로 어머니 사라는 마지막 희망이 끊어지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소송을 건 상대방과 맞붙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라가 자신의 의지을 굽히지 않았다. 사라는 사랑하는 딸들을 모두 지켜야 했기에 그 사랑이 너무 커서 한 딸을 아프게 했을 지라도 계속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소송은 안나의 승소로 끝을 내린다. 반대의 길에 서 있었지만 이 결과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된다.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포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의 사랑. 벼랑 끝에선 순간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말로 충분한 듯 하다.
그 누구도 이 판단이 틀렸다고도 맞았다고도 주장할 수는 없다. 어느 쪽으로 따져봐도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아직 내 자식이라는 개념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케이트보다는 안나에게 더 마음이 기울게 된다. 안나의 탄생은 결국 한 명의 자식의 행복을 위해 또 다른 한 명의 행복을 빼앗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한 맞춤아기 안나.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꼭 맞춤아기가 아니더라도 이런 생명과 관련된 연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연구에서 항상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결해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서 보여주는 가족간의 사랑.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던 것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 “쌍둥이별”은 맞춤 아기라는 현재 사회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그리 생소하지 않은 소재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생명에 관해 심화된 생각을 이끌어 내도록 해준다. 이와 같이 가장 민감한 사항인 생명이 주축이 되어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사례도 여럿 발견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재에 대해 사회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내세우며 찬반의 갈등도 심화되어 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놨던 삶을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어긋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만약 발생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안나는 맞춤아기이다. 자연적 탄생이 아니라 인공적 수정을 통해 어떠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 이 사명은 바로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신체적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나는 맞춤아기이지만 이런 수식어 이전에 인간이기도 하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하나의 도구로 취급될 지 언정 그녀가 인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신체적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 케이트를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어렸기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의 희생에 부당성을 찾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안나의 부모는 온갖 시술로 고통 받는 안나에게 미안함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러할 목적으로 안나를 낳은 것이기 때문에 안나의 의사를 묻는 절차조차 밟지 않고 희생을 권한다. 이는 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행동을 계속해 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나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만한 나이가 되었고 신체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소송을 건다.
이 내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 할 것이다. 누가 승소를 할 것인가?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거기에 그녀는 과연 그런 권리를 내세울 자격이 있는 지까지 수 많은 논란에 휩싸 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수적인 내용을 뒤로하고 우리가 그 소송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녀가 가진 생명의 가치는 누구도 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송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다소 지나쳐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즉, 소송의 의미는 부모님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자 간절한 부탁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 책 속에서 자식과 부모는 갈등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나간다. 비록 반대의 기로에서 서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족의 사랑은 영원히 이어가고 지켜나간다. 부모라면 모든 걸 다 바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는 보편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송으로 어머니 사라는 마지막 희망이 끊어지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소송을 건 상대방과 맞붙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라가 자신의 의지을 굽히지 않았다. 사라는 사랑하는 딸들을 모두 지켜야 했기에 그 사랑이 너무 커서 한 딸을 아프게 했을 지라도 계속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소송은 안나의 승소로 끝을 내린다. 반대의 길에 서 있었지만 이 결과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된다.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포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의 사랑. 벼랑 끝에선 순간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말로 충분한 듯 하다.
그 누구도 이 판단이 틀렸다고도 맞았다고도 주장할 수는 없다. 어느 쪽으로 따져봐도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아직 내 자식이라는 개념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케이트보다는 안나에게 더 마음이 기울게 된다. 안나의 탄생은 결국 한 명의 자식의 행복을 위해 또 다른 한 명의 행복을 빼앗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한 맞춤아기 안나.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꼭 맞춤아기가 아니더라도 이런 생명과 관련된 연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연구에서 항상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결해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서 보여주는 가족간의 사랑.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던 것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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