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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사람냄세가 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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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5,909회 작성일 13-02-0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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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부엌은 사람이 자신의 생을 지탱시켜주는 원초적인 물질인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가까운 곳이지만 먹어야 사는 동물이기에 성을 불구하고 그곳은 생존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공간을 특별한 사람 빼고는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부를 직업으로 삼은 여자들에게도 부엌은 그리 행복한 공간만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정성스럽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오는 식사 식사시간에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라는 걱정거리와 그것이 끝나면 나오는 그릇들을 씻어야 하는 귀찮음을 함께 수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엌(키친)은 그런 걱정거리와 귀찮음은 철저히 배제되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향기로운 음식 냄새만이 풍겨 나온다. 화목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부엌을 연상시키는 느낌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는 것이다. 때로는 슬프기도 하지만 그 슬픔조차도 따스함에 풀리는 아름다움이 이 책에는 잘 녹아있다.
이 책의 화자인 미카케는 바로 그러한 공간의 주인공이며, 그녀가 속해있는 틀이 그렇듯 그녀 또한 부엌을 사랑하는 대학 2학년생의 아직은 여린 여학생이다. 그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마저 그녀를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한 그녀 곁에 다나베 유이치라는 한 살 어린 남학생이 할머니 대신 다가갔고, 갈 곳 없는 그녀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연하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그의 세심한 마음씀과 자상함이 그녀를 끌었지만 더더욱 그녀를 이끈 것은 부엌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 곳이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청에 따라 집을 구할 때까지 그 집에서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미카케는 다나베 유이치와 성전환해서 이제는 아빠가 아닌 엄마가 된 에리코씨와 함께 따뜻한 집에서 지내며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차츰 슬픔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갈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유이치와 서로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그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그에게 연인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엄마, 에리코씨의 죽음으로 서로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그들은 미카케가 일 때문에 멀리 출장 나간 상태에서 그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서 그에게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직접 와서 전해줌으로 인해 비로소 하나로 묶여지게 된다.
솔직히 스토리만으로 보면 이 소설은 평범한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을 평범한 연애 소설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주인공의 심리를 부엌이라는 공간과 음식이라는 매체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결합은 단순한 결합에 지나지 않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따스한 분위기에서 정성스럽게 준비되어진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와 둘이 산 미카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외로움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을 것이다. 부엌은 외로운 그녀에게 그녀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또한 그 사람에 대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달리 부엌을 좋아한 것이며, 심지어 남들이 귀찮아하는 설거지나 식사 준비조차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옆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사람마저도 떠나갔을 때 그녀는 이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옆에 단 한 사람만이 존재했기에 그 상실감과 외로움은 더욱 컸을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부엌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를 유이치가 채워줬으며 그는 부엌까지 함께 그녀에게 제공했다. 거기에서 그녀는 다시금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다른 사람의 따스한 체온을 느꼈고 그로 인해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서도 헤어 나와 다시금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며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그녀는 예전처럼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음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물론 그녀는 유이치와의 사랑에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은 외로움에서 오는 아픔은 아니다. 누군가가 있음으로 인해서 오는 아픔이며 충분히 결합이라는 이름으로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인 것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엄마를 잃음으로 인해 예전의 그녀가 겪었던 슬픔을 경험할 때 그가 그녀에게 내밀었던 손을 내민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녀에게 부엌은 집의 한 부분에 구획되어진 한 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시켜주는 공간인 것이며 삶을 살아가는 공간인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손맛이 담긴 음식은 줄어들고 인스턴트 식품이 난무하고 있다. 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늘은 집에서 사랑을 가득 담아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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