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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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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윤상
댓글 0건 조회 6,341회 작성일 13-02-08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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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렸을 적에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인전을 읽고 그들이 살았던 삶이나 정신들이 주는 교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위인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에 부합하거나 그 나라 그 민족에게 큰 영향이나 영감을 준 사람들이기에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이상적이지 않기에 위인과 반대되는 사람들도 존재했었지만, 교육적인 목적으로 인해 학창시절의 위인전에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학창시절에 읽었던 위인전 주인공들 조차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때가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을 때 비로소 그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쳤던 위인들 뿐만 아니라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들을 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 된다.)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알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이 역사상 많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히틀러는 그 자신의 능력(대중을 이끄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시대상황을 아주 잘 이용했었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불과 2년 전인 1929년은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난 때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 자본주의로 인해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려는 또 다른 이념이 필요해졌고 그것이 곧 파시즘으로 이어졌다. 결국 독일 국민들은 빈곤과 실업과 혼란에 지쳐 정권을 히틀러에게 맡겨버리고 말았다. 히틀러는 당시 현실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국민들이 뭉쳐서 대항할 수 있는 ‘적’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그 ‘적’은 유대인이 되어버렸다. 히틀러가 바라본 독일은 유대인의 사회참여로 인해 그들의 경제, 문화적 점유가 확대된 반면, 자국민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고 독일 내 소수민족인 유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유대인들을 부정적 초인으로 보고 그들은 뛰어나지만 인류의 악이고 게르만 민족이 세계지배를 하기 위해서는 근절시켜야 할 민족으로 몰아갔다. 공동의 ‘적’이 생긴 후부터의 독일은 그야말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히틀러는 개전 초 유럽 각국을 정복하면서 승승장구 한다. 손자병법에 보면 강한 자를 피하려면 먼저 약한 자를 공격하라는 병법이 나오는데 이는 자칫 비열하고 비겁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히틀러는 손자의 이러한 전략을 역사상 제대로 실현한 인물이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크, 노르웨이, 폴란드 일부를 점령한다. 당시 체코나 폴란드는 독일의 전차부대에 대항하여 기마 부대로 맞섰을 정도로 이들의 전쟁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어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을 차례로 격파하기에 이른다. 유럽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한 독일군의 사기는 오를 대로 올랐고 이제 바다 건너 있는 영국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레이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독일군은 영국군 레이더 수신소에 대한 공격을 게을리 했다. 만약 이 때 영국 공군의 레이더망을 파괴하는 일에 주력했다면 영국 공군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틀러는 영국군의 통신기지가 아닌 영국 도시 전역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게 되는데 이는 영국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려 결국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오에 의한 것이었으며, 영국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군비 생산량이 독일을 앞지르게 된다. 히틀러의 이러한 결정이 치밀한 전략적 계산에 기인하지 않고, 분노에서 파생된 착오로 인한 것이었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전쟁의 명분 여부를 떠나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아닌 본토 전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건물 파괴와 인명 살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교전이며, 히틀러는 작전도 실패하고, 악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만 얻게 되었을 뿐이다.

히틀러가 저지른 최대의 실수(결국 패전으로 가게 된 원인)는 전력을 양분화 시켰다는 것이다. 독일 고위 관료들은 히틀러에게 영국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히틀러의 관심은 이제 영국이 아닌 소련이었다. 아마도 히틀러는 바다 건너 있는 영국의 점령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 하다. 영국 해안에 상륙을 감행하여 본격적인 육상전을 준비하지 않고 비행기를 이용한 폭격만으로 영국을 항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닌 소련을 파괴함으로써 영국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착오를 하게 되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는 소련을 우습게 보았다. 그는 소련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으며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만만하게 생각했다. 불규칙한 기후는 독일군을 괴롭게 만들었으며, 소련의 가을이 시작되기 전 독일군을 북쪽으로 보냈다가 다시 남하시키기에 시간 이 충분할 것이라 믿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소련의 도로 상태는 엉망이었으며, 소련의 저항은 생각보다 완고했다. 소련은 독일군을 민간인 포함 2천만명 이상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막아내었을 정도로 강한 애국심을 보였다. 문제는 상황이 악화되어감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계속해서 공격만을 고집한다. 처음 보여준 놀라운 연승의 기록들은 온데 간데 없었고, 승리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작전상 후퇴라는 말은 그에게 없었으며, 북아프리카를 경유하여 우회하는 전략 역시 독일군 참모진들이나 적국인 영국 조차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히틀러는 오로지 소련을 정면 돌파하는 전략을 고집한다.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의해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세계사적 관점으로 봤을 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지만 뛰어난 전략가였던 한 인물이 순간적인 오판들로 인하여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의 제 2차 세계대전 일대기를 보고 있자면, 개전초기에 보여줬던 용병술이나 전략들은 유럽 대륙을 점령한 이후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연속되는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이미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히틀러는 분명 뛰어난 장수이자 전략가이자 웅변가였다. 하지만 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오만함과 분노와 광기에 휩싸일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잘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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