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세상에서 말하지 않는 즐거움
페이지 정보

본문
<침묵입문> - 코이케 류노스케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심지어는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친 자신에 대한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로부터 욕심이 생겨 아득바득 살아가며 불행함이 자신에게 스며들게 된다.
<침묵입문>에서 ‘코이케 루노스케’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기 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나를 강조하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멋진 존재라고 믿으려한다.” 고 말하며 책을 시작한다. 상당히 의뭉스러운 말이지만, 이 말을 시작으로 <침묵입문>을 통해 자신이 ‘코이케 루노스케’가 말하는 현대인의 카테고리에 자신이 속하는지 혹은, 속하지 않는지 시험해볼 수 있다.
우리들의 지나친 자기 사랑은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있어, 입만 열면 “내가, 나는..”를 연발하며 자기 이야기만 떠들다가 결국 지루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중요하게 여겨 상대가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혹은, 당연히 귀 기울일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듣는 쪽은 다른 사람이 내뱉는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상대방도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자기농도를 진하게 만든다.’ 하고 표현하였다. 즉, 서로 ‘자기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면 인간관계가 별 볼일 없어지는 것이다.
지나친 자기 최면(사랑)에 주변 사람들이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면, 적어도 그 사랑이 남의 눈에는 이기적인 행동일 것이다. 더불어, 그토록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중간 쯤 읽었을 때,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진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용에 빠져들수록 영문도 모르게 기분이 조금씩 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 책에는 더 깊은 메시지가 있는 것을 느꼈다.
깊은 메시지는 일상적인 대화에 대한 저자의 해석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 카페, 커피 맛은 좋은데 인테리어가 별로야.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맘에 안들고.” 우리들은 비평가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트집 잡는 것에 능숙하다. 사실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비판과 단순한 불평, 트집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트집을 잡는 심리를 살펴보면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혹시, ‘이런 트집을 잡는 나는 정말 센스 있는 사람이야’ 혹은, 다른 사람을 비평할 때 ‘내가 트집 잡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낫겠어’ 라는 메시지가 뒤에 조금이라도 숨겨져 있다면 이미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하찮은 사람이다. 이는 트집 잡히는 상대에 대해 얘기하는 척하면서 자기 과시는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달으면 자연스레 하지 않을 일을 굳이 트집을 잡아 일깨워주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자기사랑에 빠져서 하찮은 사람들의 버릇은 남을 비평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려는 욕구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그런 욕망의 강도는 다르다. 만약,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올바른 것’에 대해 말한다면, 듣는 쪽에서는 듣는 순간 옳고 그름을 떠나 ‘천박한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올바른 것’에 대해서 설명할 때, 공격적이거나 상대방을 옥죄듯이 말하는 것은 혹여나 자신의 논리가 무너져버려 사랑하는 자신이 무시당함으로써 상처받을 불안함에 떨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해 상대를 끽소리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백해무익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과정에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심지어 설득당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고분고분하게 듣는 일에서 조차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낀다면 이미 전염병 같은 짖은 자기사랑에 빠져 그릇이 작은 하찮은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책을 다 읽어 갈 때 즈음, 이 책의 내용이 매우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카페의 인테리어를 비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깨우치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훈계를 둘 수도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꽂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무의식중의 생각 때문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즉, ‘코이케 류노스케’의 침묵입문에서 말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카테고리에 내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며 자존심이 상했던 이유가, 나의 약점이 낱낱이 적힌 것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 나빠하는 내 자신이 바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짙은 자기 사랑에 빠져 두텁게 자기방어막을 쳐놓은 것의 반증이라는 사실을 돌아보는 순간 마침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던 것이다. 분명, 살아가면서 하찮은 자존심이 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이를 더욱 부추긴다. 나이가 들면 어린사람에게 무시받기 싫어하고 더욱이 비논리적으로 다그치거나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1초라도 이 책의 내용을 접하면서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 마음속을 확인 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찮게 변해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하찮고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되지 말자.
‘코이케 류노스케’의 침묵입문을 통해 어느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심지어는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친 자신에 대한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로부터 욕심이 생겨 아득바득 살아가며 불행함이 자신에게 스며들게 된다.
<침묵입문>에서 ‘코이케 루노스케’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기 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나를 강조하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멋진 존재라고 믿으려한다.” 고 말하며 책을 시작한다. 상당히 의뭉스러운 말이지만, 이 말을 시작으로 <침묵입문>을 통해 자신이 ‘코이케 루노스케’가 말하는 현대인의 카테고리에 자신이 속하는지 혹은, 속하지 않는지 시험해볼 수 있다.
우리들의 지나친 자기 사랑은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있어, 입만 열면 “내가, 나는..”를 연발하며 자기 이야기만 떠들다가 결국 지루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중요하게 여겨 상대가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혹은, 당연히 귀 기울일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듣는 쪽은 다른 사람이 내뱉는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상대방도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자기농도를 진하게 만든다.’ 하고 표현하였다. 즉, 서로 ‘자기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면 인간관계가 별 볼일 없어지는 것이다.
지나친 자기 최면(사랑)에 주변 사람들이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면, 적어도 그 사랑이 남의 눈에는 이기적인 행동일 것이다. 더불어, 그토록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중간 쯤 읽었을 때,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진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용에 빠져들수록 영문도 모르게 기분이 조금씩 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 책에는 더 깊은 메시지가 있는 것을 느꼈다.
깊은 메시지는 일상적인 대화에 대한 저자의 해석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 카페, 커피 맛은 좋은데 인테리어가 별로야.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맘에 안들고.” 우리들은 비평가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트집 잡는 것에 능숙하다. 사실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비판과 단순한 불평, 트집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트집을 잡는 심리를 살펴보면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혹시, ‘이런 트집을 잡는 나는 정말 센스 있는 사람이야’ 혹은, 다른 사람을 비평할 때 ‘내가 트집 잡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낫겠어’ 라는 메시지가 뒤에 조금이라도 숨겨져 있다면 이미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하찮은 사람이다. 이는 트집 잡히는 상대에 대해 얘기하는 척하면서 자기 과시는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달으면 자연스레 하지 않을 일을 굳이 트집을 잡아 일깨워주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자기사랑에 빠져서 하찮은 사람들의 버릇은 남을 비평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려는 욕구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그런 욕망의 강도는 다르다. 만약,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올바른 것’에 대해 말한다면, 듣는 쪽에서는 듣는 순간 옳고 그름을 떠나 ‘천박한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올바른 것’에 대해서 설명할 때, 공격적이거나 상대방을 옥죄듯이 말하는 것은 혹여나 자신의 논리가 무너져버려 사랑하는 자신이 무시당함으로써 상처받을 불안함에 떨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해 상대를 끽소리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백해무익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과정에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심지어 설득당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고분고분하게 듣는 일에서 조차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낀다면 이미 전염병 같은 짖은 자기사랑에 빠져 그릇이 작은 하찮은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책을 다 읽어 갈 때 즈음, 이 책의 내용이 매우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카페의 인테리어를 비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깨우치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훈계를 둘 수도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꽂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무의식중의 생각 때문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즉, ‘코이케 류노스케’의 침묵입문에서 말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카테고리에 내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며 자존심이 상했던 이유가, 나의 약점이 낱낱이 적힌 것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 나빠하는 내 자신이 바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짙은 자기 사랑에 빠져 두텁게 자기방어막을 쳐놓은 것의 반증이라는 사실을 돌아보는 순간 마침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던 것이다. 분명, 살아가면서 하찮은 자존심이 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이를 더욱 부추긴다. 나이가 들면 어린사람에게 무시받기 싫어하고 더욱이 비논리적으로 다그치거나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1초라도 이 책의 내용을 접하면서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 마음속을 확인 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찮게 변해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하찮고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되지 말자.
‘코이케 류노스케’의 침묵입문을 통해 어느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 이전글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14.04.29
- 다음글괴짜경제학(Freakonomics) 13.02.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