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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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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5,886회 작성일 12-11-30 20:55

본문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우리는 살면서 한번 쯤 그러한 생각들을 한다. “내가 죽으면...?” 나도 사춘기 시절 이러한 생각을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운동을 하다가 그만 두고, 학업이라는 새로운 틀에 적응할 때쯤 나에게는 참 많은 변화와 생각들이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 속에 그래도 나를 잡아준 건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부모님, 누나들, 그리고 친구들... 나 하나 없어도 잘 돌아갈 세상이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의 큰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 까란 생각에 그러한 생각은 항상 “살아보자!”로 끝났던 기억이 난다.

제목부터 어찌 보면 섬뜩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로 일기장하나가 놓여있는 표지에 사로잡혀 책을 넘겨보았다. 이 책은 최근 10대들의 자살에 대해 그리며 10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저자가 지은 소설이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왜 자신들의 인생을 더 절박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들려주고 있다.

어느 날 절친이었던 재준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재준 어머니의 부탁으로 유미는 재준이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기장 첫 장에 이렇게 써 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의 오토바이 사고는 우연이었다. 재준이가 일기장에 적어둔 이 문장은 시체놀이를 통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오히려 사는 것에 대한 의지를 들어낸 것이다. 재준이는 그렇게 죽음을 우습게 본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재준이를 통해 현재 10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있는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절친한 유미라는 친구를 통해서는 재준이를 통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전하려고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요즘 10대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쉽게 무언가를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서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요즘 10대들이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상에 관계없이 이전과 같다. 이 사회구조가 가지는 부조리 때문이겠지만 아이들에게 항상 획일화된 길만 가기를 권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숨쉴 수 있는 숨통은 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학생자살률 1위에 위치해 있다. 자살하는 학생들에게 그 누군가 숨쉴 수 있는 숨통을 하나라도 찾아줬다면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 자신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도 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보니, 죽음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살아가는 것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게 새겨 주변의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 한다. 내가 참을 수 있었던 상황,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 등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 내가 살아가며 무의미하게 보내는 1분 1초는 누군가에게 참 큰 시간일텐데...

이 책은 10대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청소년 문학이지만,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더 많이 구독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본인들이 어린 시절 고심하던 그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힘들어하는 우리나라 10대들에게 좀 더 이해심 깊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10대들의 시야는 말 그대로 10대들의 시야이다. 그 시야를 넓혀 줄 수 있는 건 우리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학교-학원-도서관... 매일 일정한 장소와 일정한 패턴으로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어느 한쪽의 길만 열어줄 수 있다면 그들은 꽉 막힌 숨통이 트이듯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사회구조가 학업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그 학업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학업을 통해 볼 수 있는 20대 이상의 시야를 그들에게 미리미리 보여주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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