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었다.
페이지 정보

본문
가만히 길가에 앉아서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제도 같은 모습이었고, 1년전에도 비슷했으며 5년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바쁘게 움직여 다녔고 자신의 할 일에 치중하며 바쁘게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세상이 크게 변한 것 같지 않게 생각되다가도 1년전 사진들만 들춰보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나는 경험을 자주하게 된다. 1년전에 내가 저랬단 말인가, 세상이 저렇게 돌아갔었구나, 저게 벌써 1년전이구나 라는 생각을 부쩍 자주하게 되는 나날들인 것 같다. 2013년 새해가 밝았고 벌써 시끌벅적하게 2000년 Millennium을 맞이한지도 벌서 1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세상사는 사람들의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사람 사는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는 책 한 권을 읽어보았다. 제목은 ‘옛날 신문을 읽었다’이다.
사실 이 책은 중학생시절 자주 했던 서점기행을 하다가 우연찮게 집어 든 책이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 대단한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록달록한 컬러책도 아니다. 펴보면 옛날 국민학교 시절 폐품 수집하던 날 아침에 급하게 엄마가 노끈으로 묶어준 옛날 신문 같은 푸석푸석한 종이재질이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단지 과거의 우스꽝스러웠던 서민 생활상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이 책은 1950년부터 2002년까지의 신문기사들을 필자가 골라내어 소개하며 현재 (2002년)과 얼마나 달랐는지 간략하게 대화체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물론 매일 거리를 보면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 잘 못 느끼지만 1950년대로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단번에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듯 읽는 내내 현재와 다른 모습의 생활상이 마치 풀어보지 않은 선물상자를 하나씩 푸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만원버스, 야간통금 그리고 긴급조치에 시달리던 시절이었고, 장발족들과 이를 단속하는 단속원, 혼분식을 장려하여 대대적으로 도시락 검사까지 하던 전국의 학교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과거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1982년 1월 5일부로 해제된 야간통금과 환호하는 시민들.. 하얀 쌀밥'만'을 싸왔다고 도시락을 압수당하고, 성적표에 '혼분식성적'과 부모님이 학교로 소환되던 서울 성동구의 ㅎ중학교의 모습..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성동구에서도 불과 몇십년전에 저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니 참 이색적이기도 했고 이질적이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쌀 소비 장려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니 상황이 3~40여년 만에 반전된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던 서민들의 애환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또 지금 시대 나름대로의 사회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수십년 후에 과거를 회상하면 그땐 그랬었지 하는 말이 또 나오지 않을까...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그 중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척관법(尺貫法)에서 미터(Meter)법으로 바뀌던 1963년 6월 21일자의 한국일보에 ‘주부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며칠 전 생활 필수품을 ‘미터제’로 통일한다고 발표되었다. 실례로서 필목 한 마를 0.9143M, 고무신 17문을 240MM, 곡물의 1되를 9.019라 하는 복잡한 숫자를 기성세대인 주부들이 환영할지 의문이다. 머릿속에 꽉 박혀 있는 습관도 시대의 변혁에 따라 하나씩 변해가고 있지만 그것은 보다 편리한 것이라야 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한편 생각하면 그 불편했던 척관법이 우리 다음 세대에선 통일되어 편한 미터법을 쓰게 한다면 당분간의 불편을 겪으며 고쳐나가야 할 것 같다. 요즈음 고무신의 문수가 정확하지 않아 신어보아야 하는 불편 같은 것은 ‘미터’법을 사용하면 편리할 것도 같다. 매일 찬거리를 사고 저울을 상대하는 나부터 고쳐야겠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익숙한 미터법이지만 당시에는 한창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마치 서울시에서 대중교통 환승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 복잡하다, 왜 이렇게 바꿨나, 교통 대란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쳐대던 사람들과 언론을 보는듯했다. 고등학생이던 당시에 나도 불편하고 짜증났지만 지금은 서울시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제도가 되어버렸듯 1963년을 살았던 어느 가정주부도 하루아침에 덮친 미터법 때문에 놓아야 했던 척관법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다음 세대를 위하여 현재의 불편을 감수해보겠다는 주부기자의 결의는 지금 너무나도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이 ‘갑자기 복잡한 숫자와 대면하며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묵묵히 불편을 감수하여 사회적으로 잘 정착될 수 있었던 국민적인 노력’이 짙게 배어있는 노력의 산물임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미터법만 보아도 이런데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편리함이 정착되는데 얼마나 큰 사회적 노력과 협의가 녹아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상은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수메르 설형문자 기록에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1960년대 전후 시대를 지나던 한국에서도, 그리고 싸이가 전세계에서 한국말로 노래하며 말춤을 추는 2013년 새해에도 신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반항적인 눈초리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성토하는 젊은 세대들은 보편적인 세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보편적인 삶 속에서도 점점 시대의 조류에 맞게 흘러가는 세태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이 미래에 기록될 역사책의 한 귀퉁이에 나타날 귀중한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옛날 신문을 읽으며 과거 일들을 보고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며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 이전글부러진 화살 (2012) 13.01.01
- 다음글현명한 유권자 되기 12.12.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