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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야기의 연대기적 끝에서 시작된다.
법원의 개인 방에 판사들이 모여 있을 때, 판사이자 이반 일리치의 절친한 친구인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이반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방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닌 이반이 죽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끼면서도, 이반의 죽음이 가져올 승진과 전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날 저녁, 표트르는 이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이반의 시신을 바라보는 순간, 표트르는 이반의 얼굴에 떠 있는 불만과 경고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이반의 아내였던 프라스코비야는 죽은 남편의 정부 연금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표트르에게 캐묻는다.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반의 과거 삶을 묘사하며 이어진다.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열세 살 무렵 그는 법학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상류층이 지닌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이반은 개혁된 사법제도에서 예심판사로 일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방으로 부임한다. 그는 결혼을 하며 무난하게 생활을 이어간다. 직장에서 그는 사적인 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채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정에서는 가족에게도 형식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고, 법무부의 행정 개편으로 인해 절친한 친구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는다. 덕분에 이반은 도시에 더 높은 연봉의 자리를 얻는다.
어느 날 이반은 왼쪽 몸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열이틀이 더 지나자, 이반은 더 이상 소파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는 누운 채로 죽음을 곱씹으며 자신의 고통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를 묻는다.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는 멀리 과거를 떠올릴수록 더 많은 기쁨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통이 점점 더 심해졌듯, 그의 삶도 그렇게 더 나빠졌음을 느낀다. 만약 자신이 올바르게 살지 않았다면 고통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신의 삶이 늘 적절했다고 기억하며 그는 죽음의 무의미함에 체념한다.
그 순간, “어떤 힘”이 이반의 가슴과 옆구리를 세차게 친다. 그 힘은 그를 자루 너머로 밀어 밝은 빛 앞에 세운다. 바로 그때 그의 손이 아들의 머리에 닿고, 그는 아들이 안쓰럽다는 감정을 느낀다. 아내가 눈물이 고인 얼굴로 그의 침대에 다가오자, 그녀 또한 가엽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공적인 삶과 가족, 사회적 관계가 모두 인위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극도의 기쁨을 경험한다.
한숨 한가운데, 이반은 몸을 뻗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평생 동안 경력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몰두하였다.
이러한 추구는 그의 유한성을 성찰하는 데서 그를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병이 들어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자, 그는 이 가혹한 현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는 냉소적으로 삶을 되돌아보며, 권력과 지위, 경력 같은 하찮은 것들에 매달리며 인생을 허비했다고 자각한다. 그러자 그는 삶의 의미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소중하게 여겼던 피상적인 것들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진정 중요한가? 더 나아가 그는 병마로 인해 겪는 고통스러운 고난의 의미를 묻는다.
“이 모든 공포는 왜 존재하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이 순간 그가 누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실존적 질문은 신, 혹은 생과 사를 모두 이해하는 전지적 존재를 향한 듯하다. 이는 죽음 앞에서 필사적으로 답을 구하려는 그의 심정을 드러낸다.
원인 불명의 불치병에 걸린 이반 일리치는 서서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결국 자신이 경력과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며 에너지를 허비했다고 결론짓는다.
그 결과 그는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Nothing left but to die.”
- Ivan Ilyich, 작품 中 -
죽기 직전의 그는, 그가 집중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존재의 근본적 진실, 혹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로부터 그를 분산시킨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반은 이 생각에서 어떤 만족감을 느낀다. 마치 이 깨달음 자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삶과 죽음에 진정한 목적이나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저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 약간의 명료함을 줄 뿐이다.
그것은 단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낼 뿐이며, 이반은 죽음의 과정을 직접 겪음으로써만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삶의 의미를 밝히기보다는, 인간이 존재에서 더 큰 의미를 짜내려는 욕망 자체를 드러낸다.
그것의 실질성 대해서 작가는 아무런 단서를 주지 않는다.
이반이 죽어갈 때 그는 죽음이 “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두 상태가 하나로 합쳐지며, 죽음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일부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어쩌면 다소 깊이 있는 통찰처럼 보이고, 깨달음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독자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삶의 의미를 붙잡으려 애쓰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결국 존재의 목적에 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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