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여행의 이유 – 김영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영준
댓글 0건 조회 1,101회 작성일 25-08-01 12:32

본문

“실패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여름 방학’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설렌다. 나에게 다시 여름 방학이 찾아오다니, 그 자체로 신기한 경험이다. 이맘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바다와 여행. 나는 늘 여행을 앞두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관광지, 식당, 숙소, 교통편까지 빠짐없이 조사하고, 그 계획을 하나의 ‘성공 시나리오’처럼 따라간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그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이전 여행에서 그런 ‘진짜 여행’을 겪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렌트카를 수령한 뒤 낯선 도로를 긴장 속에 운전해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호텔 주차장은 예상보다 큰 비용이 필요했고, 주변 공영 주차장은 규정이 애매하게 적혀 있었다. 결국 “여기 주차해도 괜찮겠지”라는 불안 속에 차를 세웠다. 다음 날 아침, 차는 사라져 있었다. 처음엔 도난을 의심했지만, 인근 가게 주인에 따르면 “현지인만 종일 주차 가능한 곳이고, 렌트카는 오후 5시 이후 반드시 이동 시켜야 한다.”고 했다. 견인된 것이었다. 견인소를 찾아가고, 벌금을 내고, 차를 되찾는 과정은 계획, 예산, 일정 모두를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가장 많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견인된 차 찾기 대모험”은 고생스러웠지만, 현지인과 소통하고 낯선 동네를 걸으며 예기치 못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완벽한 여행에는 이야깃거리가 없다. 시간이 지난 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언제나 ‘망한 순간’이다.

 

    실패는 또 있었다. 현지에서 유명한 맛집을 예약까지 했지만, 오후 2시에 도착하자 “지금 줄 서도 오후 5시 입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탈한 마음에 아무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메뉴도 없고, 영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주인 할머니의 추천을 믿고 주문한 음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속, 진한 카레 향의 조화. 계획표에 없던 이 무명의 가게는 결국 우리 가족이 가장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맛집’이 되었다.

 

    계획된 선택은 실패했지만, 우연한 선택이 최고의 기억이 되었다. 이 또한 실패가 안겨준 선물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완벽한 여행기는 재미없을 것”이라 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실패할 준비도 함께 해야 한다.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길로 이끌고, 주차장이 견인소로 이어지며, 계획한 식당 대신 낯선 가게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분명히 온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여행의 장면이 된다.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아마 여전히 꼼꼼히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계획이 어긋나도 괜찮다. 실패는 곧 모험의 시작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재료이며,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순간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난 뒤 더욱 예쁘게 포장되어 내 안에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