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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몰락하는가 전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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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1,144회 작성일 25-08-10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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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몰락하는가 전락하는가 ”

- 알베르 카뮈 著 「전락」 을 읽고 -


 거울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얼굴을 마주한다. 아, 물리적인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당신의 본질과 그 속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앞에서 말이다. 하나는 타인의 눈에 비친 ‘외부로부터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믿고 싶은 ‘내부로부터의 나’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나’ 사이에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간극(間隙)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전락」은 이 두 얼굴의 간극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책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음습한 바에서, 주인공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낯선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한때 파리 사교계에서 촉망받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고상하고 정의로우며,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 인간이었다. 그러나 밤중에 다리 위를 지나던 어느 날, 강물로 투신하는 여인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하며 그 자리를 떠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날 밤 물결 속으로 사라져 가는 누군가의 마지막 몸짓을 외면한 순간,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도덕의 탑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에게 그 이후의 삶은 ‘몰락(沒落)’이 아닌 ‘전락(轉落)’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인 클라망스가 단순히 변호사로서의 명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기 확신과 이를 스스로 인정하며 끊임없이 고백해나가고, 더 나아가 추락 이후의 바닥을 무대 삼아 타인의 도덕성까지 함께 끌어내리는 능동적·반성적·심리적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전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에 나의 언어적 해석을 조금 덧붙이자면, 몰락은 ‘빠질 몰(沒)‘ 의 뜻으로 마치 물속에서 서서히 가라앉는 듯 외부 환경에 의해 빠져 들어가는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가라 앉는 속도가 어느 정도에서는 일정해지고,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다시금 떠오를 수 있는 물리적/추상적 일체감을 동시에 준다. 그러나 전락은, ’구를 전(轉)‘ 의 뜻으로, 몰락 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이며 그 무너짐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굴러‘ 떨어짐이란,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추락의 속도는 더 빨라지며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마치 클라망스가 그날 밤 외면한 여인은 물에 빠져 물리적으로 ’몰락‘하게 되었지만, 이를 외면한 클라망스는 그 이후로 삶 자체가 매 순간을 지나며 ’전락‘해 버리는, 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음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주인공 클라망스의 전락은, 단순히 그의 위치에 대한 하락이 아니라 스스로의 추락을 끝없이 목격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죄를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은 속죄가 아니라 오히려 듣는 이의 양심을 함께 끌어내려 자신과 동일하게 ’전락을 자각하는 타락자‘로 만들려는 욕망과도 같다. 자신의 죄를 미학적으로 포장하며, 상대가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게 그는 자기 심판의 법정을 타인의 내면 속에도 세우며 자신과 타인의 도덕성 모두를 서로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클라망스의 행위를 통해 알베르 카뮈는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선함과 도덕은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는 도움을 주는 행위를 순수하게 실행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주는 자기만족과 명성을 위해서인가. 소설 속 주인공은 한때 타인을 돕는 일에서 스스로에 대한 숭고함을 느꼈지만, 그 감정 속에 교묘히 숨어 있던 허영심 자체를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허영심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숭고’했던‘ 자신을 연기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이러한 전락이 단순히 한 개인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완전히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의미로써 새로운 권력을 획득한다. 그것은 도덕적 우위가 아니라, 타인을 자기와 같은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부정의 권력이다. 그는 “내 죄와 도덕적 전락을 듣는 당신은, 그런 당신은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무언의 질문을 던지며, 듣는 이를 자기 죄의 증인이자 공범으로 만든다. 이렇게 그의 전락은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과 사회 전체에 공유되는 ’공동의 전락‘이 되게 만든다.

 

 결국 인간인 우리가 개개인의 도덕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믿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 믿음은 언제든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요즘 우리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 많은 문제들을 보면, 애초에 시작부터 도덕적으로 옳지 못했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도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그 당시에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혹은 실제로는 도덕적이었을지라도, 후에 어떠한 계기로 그 도덕성을 지키지 못해 무너져 내림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이러한 전락이 더 비극적인 이유는, 적어도 나는 옳았었다는 옳지 못한 생각의 관성 때문에 단순한 도덕적 잘못을 넘어서 그렇다면 진정한 도덕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뿌리 자체를 흔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을 때 가장 중요하며 경계해야 할 것은, 무너진 탑을 다시 쌓아 올리려 하는 이가 아니라, 그 폐허 위에서 잘못된 기반으로 새로운 탑을 세우려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거울 앞에 세워두어야 한다. 물론, 물리적인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당신의 본질과 그 속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앞에 말이다. 누구의 것이던, 그 거울은 온전히 깨끗할 수 없다. 어느 쪽은 금이 가고, 어느 쪽은 때가 묻어 있더라도 우리는 그 앞에서 이상적인 자아와 숨기고 싶은 자아, 그리고 그 사이를 위태로이 지키고 있는 도덕성을 동시에 보게 된다.

 이제, 그 거울 앞에 선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두 자아 사이의 간극을, 당신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 끝없는 도덕적 전락의 위기 앞에서도, 당신은 그 두 간극의 균형을 잘 지키며 추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마침내, 우리는 그 거울 속에서 단 하나의 얼굴만을 보게 될 것이다. 이상과 위선, 고백과 변명, 오해와 기만. 그 모든 층위가 겹쳐 하나 된 얼굴이 거울 속에서 당신을 응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역으로 당신의 도덕성을 관통할 칼날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얼굴이, 당신 자신임을 과연 부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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