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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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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1,072회 작성일 25-08-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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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서맨사 하비-


"발아래서 지구가 빠르게 구르고 있었다. 놀랍도록 적나라한 지구. 여기서 보는 지구는 단단한 고체 같지 않다. 표면은 흐르고 있고 반질반질하다."


서맨사 하비의 궤도는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도 강렬한 사유의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배경은 국제우주정거장. 지구 중력의 100만분의 1에 가까운 무중력 상태에서,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출신의 여섯 명 우주비행사들이 하루 24시간 동안 지구를 16차례 도는 모습을 담아낸다. 책의 장은 ‘궤도 1, 상행’에서 시작해 ‘궤도 16’으로 끝나며, 하루 동안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 떠다니는 식사 도구와 자석에 붙은 포크, 그리고 우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요와 붕 뜨는 감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내려다볼 때,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행성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오랫동안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끝없는 끝을 향해 나아가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정작 지구를 떠난 자리에 서면, 떠나온 행성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유일한 집임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물음을 정면으로 다룬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깨달음을 경험한다. 일본인 우주비행사 치에는 우주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는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이제 어머니마저 잃은 그는, 더 이상 지구와 이어줄 가족이 없다는 상실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고립 속에서 그는 뼈아픈 진실을 깨닫는다. “이제 자신에게 생명을 준 존재로 가리킬 수 있는 것은 저 구체뿐이다. 저게 없으면 생명도 없다. 저 행성이 아니면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단 하나의 조건임을 그는 우주에서 절실히 자각한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성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숲, 극지방, 저수지, 빙하, 강, 바다, 산,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


우주정거장에서의 하루는 인간에게 낯선 시간 감각을 부여한다. 90분마다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은 하루를 열여섯 조각으로 나누고, 동유럽에서 러시아,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내려가는 긴 여정이 단 20분 안에 끝난다. 이러한 압축된 시간은 인간의 존재를 상대화시키며, 우리가 살아온 일상적 시간의 단단한 틀이 얼마나 가변적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우주적 시간 속에서도, 인물들은 여전히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떠다니는 포크를 붙잡으며 생활한다.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과 사소한 인간적 감각이 동시에 공존하는 풍경은,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인상이다.


나는 궤도를 읽으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인간은 끝없이 뻗은 우주 앞에서는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작은 존재는 지구라는 행성의 품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 우주를 향해 나아가기를 갈망했지만, 그토록 벗어나고자 한 곳을 멀리서 바라보는 순간, 지구가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는 천국이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 것처럼 여겼지만, 막상 우주에 올라 내려다본 지구는 더 이상 대체 불가능한 낙원이 된다.


궤도는 인류가 쌓아온 과학의 결실인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전하는 메시지는 철저히 인간적이다. 지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집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적 시선은 우리에게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보편적인 연대감 자각시키고, 지구적 감각은 그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되새기게 한다.


나는 작은 인간 존재로서 느끼는 무력감과 동시에, 그 무력함을 품어주는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경외심을 동시에 안게 되었다. 궤도는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 작품이다. 결국,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 속에서 인간이 붙잡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지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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