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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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초
- 성해나의 '두고 온 여름'를 읽고 -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연이 맺어졌다 끊어진다. 어느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뿐이지만, 또 어떤것은 도저히 떼어낼려야 떼어낼 수 없는 질긴 인연이 된다. 그리고 또한, 끊어내고 싶지 않았지만 끊어져 버리고 마는 인연도 존재한다.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은, 이렇듯 만남과 헤어짐이 잦은 우리 인생에서 한순간 가족이 되었다 결국은 남남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계속 뒤돌아 보게 만드는, 한때의 인연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 관해 작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친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재하'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러던 와중, 재하의 아버지가 경상도 출신인 한 여성과 결혼하는데, 그 여성 또한 슬하에 '기하'라는 이름의 아이가 한명 있었다. 재하는 아버지의 재혼을 못마땅하게 여겨 새 어머니와 기하에게 쌀쌀맞게 구는 한편,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아토피로 인해 병원을 들락날락 했던 기하를 측은하게 여겨 돌봐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재하 가족은 아버지가 자주 사진을 찍으러 나갔던 인릉으로 처음으로 다같이 나들이를 나가게 되고, 서로 어색했지만 어찌저찌하여 가족사진을 찍는, 약간이나마 가족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나들이였다. 그 이후 대학에 간 재하는 점점 가족과의 연락을 끊게 되고, 새 어머니의 전남편이 칼을 들고 재하 아버지의 사진관으로 쳐들어와 난동을 부린 계기로 재하 아버지와 기하 어머니는 이혼하여 가족은 해체되고 만다. 긴 시간이 지난 이후, 재하와 기하는 제외한다. 하지만 이미 기하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상태였고, 서로 어색해진 그들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어릴적 가족여행을 갔었던 인릉으로 짧은 나들이를 간다. 그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짧게 추억한 그들은, 마지막에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진다.
이 소설 '두고 온 여름'의 작가 성해나는, 과거 한때 본인 곁에 있었지만 떠나간 이들을 깨끗이 털어내지 못해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마음을 정리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확실히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때 들었던 느낌은, 찝찝함이었다. 재하는 어릴적 철없는 마음에, 먼저 다가와준 기하의 어머니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결국 가족은 해체되고, 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재하가 새 어머니를 찾아뵙고 당시의 태도에 대해 사죄를 구하려 하였지만, 이미 그녀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어릴적 나름 친하게 지냈던 형제는, 다시 만났을때는 어색한 남남이 되어있었다. 소설의 끝까지, 제대로 해결된 것 없이,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와닿았다.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어릴적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친구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별한 연인, 사별한 가족 등 한때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찾을 수 없는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 인연들의 끝은 보통 소설이나 영화처럼 장렬하거나 극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일반적이게, 서서히, 그리고 가끔씩은 어이없게 찾아왔던 것 같다. 졸업을 하거나, 사이가 나빠졌다거나, 사는 곳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이유 말이다. 그러한 인연의 맺고 끊음에는 사실 기승전결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서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다 무엇인가 큰 사건이 터져 서로 이별을 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혹은 다시 만나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맺어지거나, 또 어느 순간 끊어지기 때문에 무릇 찝찝함과 같은, 모두 해소되지 않은 기억과 감정의 잔여물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극적인 사랑, 우정, 이별과 만남을 다룬 창작물들이 그렇게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소설 '두고 온 여름'의 결말은 찝찝하다. 흔히 창작물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극적인 만남과 이별은 없고, 현실에 있을 법한 재혼 가족간의 갈등과 이별, 밋밋한 만남과 결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소설은 현실에서의 인과 연을 더욱 생각하게 하고, 독자가 살아온 세월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때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름 오랜 시간동안 숙고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떠나간 인연에 연연하며,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다. 그 중에는 다시 잡고 싶은 인연도 있었고, 진저리가 나서 스스로 끊어낸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느슨한 실이 풀어지듯이,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된 인연들이었다. 어릴 적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웃들. 군대와 대학교에서 만난 선후배와 동기들. 어쩔때는 그 사람들이 그리워, 소설과 같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관계가 생각나서 문득 문득 보고싶어질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인연의 실이 풀어지게 놔두었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물론 누구에게나 끊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끊어져버린 인연이 몇 있을테지만,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굳이 과거 한때 인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본인이 끊어지지 않길 원했던 인연들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사람들이야 말로 내가 진정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붙들고 있던 인연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본인이 떠나가게 놔두었던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내 주위에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대부분은 내가 굳이 잡지 않아 떠난 인연이고, 내가 잡고 싶어 붙들고 있는 인연이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작품을 읽고 느꼈던 찝찝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작품의 결말에서 기하는 한국에서 하던 자영업을 접고, 일본의 빠칭코에서 알바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재하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막상 편지를 보내려 하였으나 기하는 재하에게 주소를 받지 못하여, 어릴적 살던 재하 아버지의 사진관에 누가 받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결말에 대해 큰 공감이 가질 않았다. 인연의 끈이 다 풀려 떨어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라 할까? 서로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풀려가는 인연의 끈을 어떻게든 붙잡아 당겨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미련없이 끊어낸 다음 주위 사람에게 더 신경을 쏟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애매한 태도로 결말이 나기 때문에, 내가 찝찝함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인연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떠나간 인연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 '두고 온 여름'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옛 말에 '인생이란 부평초와 같아,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떠다니는게 우리네 인생이니, 그 과정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 혹은 운명에 몸을 맡겨 부평초처럼 이리 저리 떠다니는 삶이란 지금 시대에는 너무 촌스럽다. 붙어있길 원한다면 붙잡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고, 떨어질 것 같은 인연이라면 미련없이 놓아주는 것이, 사람과의 인연을 대할때 필요한 삶의 태도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엔 부평초지만, 좀 더 억센 부평초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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