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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가 된 인간 : 이응노, 줄리안 오피& 소피 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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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5,791회 작성일 14-04-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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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가 된 인간 : 이응노, 줄리안 오피& 소피 칼 전 (대전 이응노 미술관)

약 5년 동안 대전에서 지내면서 이 도시에 대해 가진 생각 중 하나는 서울이나 부산처럼 크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살면서 지내기에 여유를 느끼기 좋다는 점이다. 특히 공간적인 여유가 많이 느껴지는데, 한밭 수목원을 중심으로 하는 넓은 공간은 많은 대전 시민들이 나들이 나가기에 너무나도 좋은 곳이라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내에 그렇게 넓은 곳과 잘 갖추어진 공원 시설이 있다는 것은 대전 시민들의 큰 행운이라고 여겨진다. 수목원과 함께 위치한 주변 건물들로는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대전 시립 미술관, 천연기념물 센터와 열대식물원 등이 있어서, 다양한 문화, 예술, 자연을 한 곳에서 보고 접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밭 수목원을 가로질러 북으로 올라가서 만나는 둔산대교를 건너면 바로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이어지니, 이곳은 대전의 청소년들과 시민들을 위해 살아있는 교육의 공간으로써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최근에 아들이 태어난 지 100일이 된 기념으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뒤 추억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었는데, 이곳의 한 미술관에서 아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전 시립 미술관 옆에 있는 작은 미술관, 이응노 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인 고암 이응노 화백의 예술에 대한 연구와 전시를 맡고 그 정신을 계승할 목적으로 2007년에 개관된 곳이다. 89년에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서예가 가지고 있는 조형을 현대화하는 문자 추상의 작품들을 남겼으며, 인간과 자연을 추상화한 한자를 이용해 70년대의 문자추상 연작 속에서 인간 형상 등을 표현하였는데, 그의 작품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이응노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들도 고암 이응노의 ‘군상’과 영국의 대표 팝 아티스트 줄리안 오피,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인 소피 칼의 작품들을 통해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고암의 작품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기획되었다. 고암의 ‘군상’이란 익명의 군중이 서로 어울리고 뒤엉켜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어울림을 표현하였던 작품이며, 작고하기 전의 80년대 당시의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집약시켜 탄생하게 된 결과물이다.

‘텍스트가 된 인간: 이응노, 줄리안 오피 & 소피 칼’이라는 전시명을 가진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고암의 작품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입장료를 낸 관람객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은 스티커를 받아서 한쪽 벽에 붙일 수 있고 거기에 메시지도 남길 수 있도록 해주는데, 한 명, 한 명의 관람객들이 남기고 간 그 사람 형상들이 모여서 마치 고암의 ‘군상’과 같은 멋진 작품이 만들어진다. 관람객들이 입구를 통해 들어오면서 그 벽을 마주하게 되면 모두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예술적이면서 친인간적인 전시회에 대한 벅찬 감격을 받았다. 미술관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많은 작품들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시된 군상 약 20여 점과 다른 두 작가들의 10여 점의 작품들은 미술관이 작다거나 작품이 적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였다. 인터넷이나 책에서만 간혹 보아왔단 고암의 작품들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 전시회를 다녀온 후에 나는 우리나라에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이렇게 훌륭한 미술관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입구에서 시작한 감동이, 작품을 관람한 이후 마지막에서 정점을 찍게 되었다. 이 전시회의 마지막에는 관람객들이 각자 시트를 받아서 원하는 글귀를 적고 그걸 들고서 사진 촬영을 해주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프린트를 해서 관람객에도 주는 동시에 한 쪽 벽에도 붙여 준다. 그 벽은 그와 같은 관람객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혹은 가족과 함께 적은 글귀를 들고 있는 모습은 각자가 하나의 작품이자 전체가 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써 만들어진다. 입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전시회가 추구하는 인간과 예술, 그리고 텍스트에 대한 관람객의 참가를 멋지게 유도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동시에 전시회의 참가에 대한 의의를 느끼게끔 해주는 멋진 이벤트였다. 이번 전시회의 관람객의 이해와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시 방식과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 등을 준비한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 가족은 입구의 스티커와 마지막 사진을 통해 아들의 출생 100일을 기념하기 위한 메시지를 남기는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 전시회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이 있다면, 전시회의 관람비가 단돈 500원이라는 점이다. 버스비의 절반도 안 되는 돈만 있다면 이렇게 훌륭한 전시회를 관람하고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 2시와 4시에는 전문 큐레이터에 의한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음성 가이드 장비도 무료로 대여해준다. 나는 대전에 있는 동안 종종 이 미술관을 관람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다른 분들이나 동료들도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러한 훌륭한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쯤 꼭 관람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2012 특별전 ‘텍스트가 된 인간: 이응노, 줄리안 오피 & 소피 칼’은 2013년 1월 13까지 전시하며 개관 시간은 10:00~19:00까지, 월요일은 휴무이다. 그리고 매월 넷째 주 일요일은 ‘미술관 가는 날’로 모든 관람객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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