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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성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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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우철
댓글 0건 조회 5,913회 작성일 14-04-2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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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의 구조변동 -위르겐 하버마스 (Jugen Harbermas)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 자주 쓰였던 말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기반 사회‘ 또는 ”지식기반 경제“라는 말들이다. 지식과 정보가 가치의 중심이 되는 사회, 지식인이 우대받는 사회라니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지식과 산업의 이런 관계가 껄끄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지성은 ”비판하는 이성“이 아니라 ”산업“의 일부로 수용되었다는 뜻이니 말이다.”지식“이 자본이나 토지, 노동처럼 경제의 생산요소가 된다는 것은, 산업화되지 못한 지식인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지성이 지녀야 할 고유의 비판의식 조차 사회의 산업과 정치관계에 얽매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우리사회에 차디찬 메스를 들이댈 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 현존하는 최고의 ”비판“ 철학자인 하버마스라면 가능할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로서 “공론장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현존하는 인물 중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사회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비판적 철학의 아버지가 된 것은 자라온 환경에 의한 영향이 크다.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언청이로 태어나 당시 나치 시대의 독일 청소년들이 입단했던 히틀러 유겐트에서 언어장애 판정을 받고 14세의 나이에 응급처치 반에서 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 뉘른베르크시에서 독일의 전쟁범죄인을 소추하여 처벌하기 위한 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리고, 이 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의 광폭성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게 되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은, 숨겨진 죄에 더욱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침묵하는 지성인들이었다. 악의 주범들은 전쟁과 재판을 통해 사라졌지만, 그에 동참했던 자신들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사람들. 즉, 나치 독일의 전쟁과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없었다. 하버마스는 나치시대에 침묵을 지키거나 모습을 감췄던 철학과 지성인들을 비판하였고, 스스로도 통렬한 반성을 하였다. 세계적인 철학자로서 위세를 떨쳐왔던 하이데거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대한 단 한 줄의 비판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버마스는 진정으로 필요한 시대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나 비판하는 지성, 비판적 철학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는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참혹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버마스의 대표적인 저서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그는 비판적 지성을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의 자유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사회적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론”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하버마스는 먼저 18세기 유럽의 부르주아 공론장에 주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은 바스티유 감옥 앞, 광장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카페 등에 모여 절대 왕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는 그 과정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1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이르러 해체되어 갔다. 돈이 지배하는 대중매체 권력 및 경제체제, 국가의 과도한 개입주의 등으로 인해 활발한 토론공간인 공론장은 힘을 잃어 간 것이다. 이러한 공론장의 부재가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사회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지닌 지성인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억압과 권력에 의해 모두가 일정한 틀 안에서 생각하고 이야기 하는 사회. 그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하버마스가 깨어있는 지식인, 실천하는 지성을 강조하며 평생에 걸쳐 비판적인 철학을 강조해온 것은 어린 시절 그가 겪은 나치라는 악의 사회 속에서 인간의 침묵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떨까. 우리 사회에서도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담론을 가로막는 구조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재벌구조의 개혁을 이야기 하거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정부에서 작게나마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촛불 시위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 8월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판정을 받은 것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 이라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공론장을 보존해준 중요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누구나 언제나 자유롭게 동등한 화자로서 말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론장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생각을 지닌 지성인이 많을수록 우리사회가 더욱 더 진보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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