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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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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6,142회 작성일 14-04-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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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들었다. 이야기인 즉슨 속칭 이름만 대면 알법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여 매주 괜찮은 조건의 여성들과 맞선을 보러 다닌다는 것과 그에 대한 대가(?)로 무려 수백만원에 달하는 회원가입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맞선에 성공하여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거액의 인센티브(?)를 지불하게끔 약관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니 사적인 관계 맺음의 영역이 점차 자본주의 속의 시장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썩 바람직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한 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에게 수수료를 받고 만남을 주선하는 결혼정보회사의 수는 27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직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몇몇 선두 업체의 경우에는 수천에서 수만명의 회원 풀을 가지고 중매시장을 이끌고 있다. 또한 시장규모의 경우에도 2000년대를 기점으로 빠른 성장을 거듭하여 무려 1천원에 이른다고 하니 결혼정보회사가 과거의 음성적 중매문화를 양성화하는데 기여했다라는 긍정적 평가 속에서 결혼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고액 결혼정보시장의 가파른 성장의 이면에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보상심리가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나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의 경우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자립성을 배우자 조건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법적 제도적으로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울러 결혼 후 임신과 출산 등으로 일을 그만 둔 속칭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숫자가 2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결혼을 일종의 경제적 보험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는 것 또한 불가피한 현상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제적 유인 심리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결코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가장 중대사라고 여겨지는 결혼이라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이 책 “스님의 주례사”에서 찾을 지도 모르겠다. 스님과 주례사.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명사를 나란히 제목으로 붙인 책은 오랫동안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며 결혼 전 반드시 읽어야 할 대표적인 글로 화제가 된 법륜 스님의 남녀 마음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과 연애 혹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이란 주제를 통해 행복한 남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계론 까지 확장하여 참된 인생의 지혜를 보여준다.

철학자 몽테뉴가 이르기를 “좋은 결혼이 극히 적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하고 있다”라고 했다. 모두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지만 실상 정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책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갈등이 왜 생기는, 또한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결혼 생활이 겉도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즉 결혼을 통해 서로 ‘상대에게 덕 보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사람이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떤가, 지위는 높은가, 외모는 아름다운가 이렇게 따져가며 이리저리 고르지만 내가 고르고 따진 만큼 상대 또한 기대가 크며 그러한 기대란 것이 막상 결혼 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결혼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가슴에 품고 가라고 말한다. “결혼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 않을 때 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결혼이 서로를 속박하지 않게 된다.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상대에게 덕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골라도 막상 고르고 나면 제일 엉뚱한 사람을 골라 결국엔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 결혼생활을 잘하려면 상대에게 덕 보려고 하지 말고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새겨야 한다.” 다시 말해 최상의 혼수는 결국 자신의 마음 다스림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한 부부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노력 없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는 접어두고 더더욱 마음을 단련하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모든 경우에 해당 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이면에는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 아닌 경제적 보상기제로 여기는 사회 풍조가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혹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해서 같이 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제력 덕’ 좀 보기 위해 같이 산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 런지도 모르겠다. 한 가정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아가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확장된다고 볼 때 물론 이를 위한 사회적, 정책적 해결책도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그 출발은 부부 각자의 마음 가짐을 되돌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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