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연구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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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과에 다니는 사람치고 Bell Lab (벨 연구소)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반도체 업계의 핵심이라 불리는 트랜지스터가 최초로 발명된 연구소이며, 전기 전자 산업의 한 세대를 이끌었던 곳. 지금은 그간의 역사를 뒤로한 채 그 위용을 잃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벨 연구소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와 같은 연구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벨 연구소는 현대에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국가 연구소나 사기업 연구소와는 다른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벨 연구소가 가지는 태생과 더불어 그 당시의 시대상과도 연관이 있다. 전화가 발명된 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전화 사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단일화 되지 않은 시스템은 비효율을 낳았다. AT&T는 이 와중에 “하나의 정책, 하나의 시스템, 세계적인 서비스”라는 표어를 걸고 수많은 독립 전화 회사들을 인수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 제일가는 독점 회사가 되었다. 오늘 날의 MS의 예와 같이 국가에서는 어느 분야의 독과점을 막는 것이 정상이나, 통일된 전화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명목 하에 통신분야의 독점은 용납되었다. 이렇듯 정부와 벨 연구소가 속한 AT&T는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서로에게 윈윈(Win-Win)이 되었고, 벨 연구소는 독점에서 비롯된 넘치는 자본으로 금전적으로 부담 없이, 그리고 연구에 대한 실적부담 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는 한창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쟁의 전황이 급박해지면서 ‘미지에 대한 추구’로 정의되었던 과학 연구가 ‘과학을 응용하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인식이 전환되었던 시기였다. 전쟁으로 인해 기존에 확립된 과학, 공학, 사업의 표준이 뒤집히고 현실적인 기술의 난제를 해결하는 일에 박차가 가해지면서, 기초과학을 넘어선 공학 연구의 결과물로 트랜지스터와 같은 발명품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발명이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한 개인이 혼자서 순간적인 영감으로 결과물을 얻어낸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을 발전시키는 기술적 도약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에는 각 개인의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발명과 관련된 힘이 수렴되기 시작하고, 그 현상이 몇 달 또는 몇 년 또는 몇십 년에 걸쳐 점점 뚜렷해지고 빨라지면서 다른 아이디어와 관계자의 도움이 추가된다. 여기에 우연찮은 요소들이 결합되고, 그러고 나서야 때때로 도약이 이뤄진다. 이러한 도약은 나중에 뒤돌아봐야 비로소 뚜렷이 보인다.
당대에 벨 연구소가 아무런 부담 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유일한 연구소인 점도 작용했겠지만, 벨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그 당시 가장 전도유망하고 지식적으로도 결코 뒤떨어질 일이 없는 인물들이 모이면서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킨 점이다. 그래서 인지 1940년대 이후 AT&T의 독점이 무너지면서 안정적인 재정이 끊기고 뛰어난 인재들이 하나 둘 연구소를 떠나면서 그러한 시너지효과가 사라지면서 트랜지스터와 같은 세상에 변혁을 가져올만한 뛰어난 기술의 발전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 날에도 벨 연구소는 존재하지만, 당시의 문화와 목적 그 자체는 전혀 다르게 남아 있다. 벨 연구소의 자유로운 연구와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전자공학, 통신학 등이 시너지를 일으켜내며 세상을 바꿀 기술을 만들어내는 그 문화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현재 벨 연구소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단 4명뿐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도 벨 연구소 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기업 연구소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자사의 수익을 최우선 하는 기술을 만드는데 매진하기 때문에 벨 연구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AT&T의 벨 연구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익재단의 성격도 강했기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 사회와 공유하였고, 트랜지스터와 같은 기술들은 세계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꿨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권장되었다는 벨 연구소. 실적부담 없이 과학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그 시기의 벨 연구소는 연구를 하는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향이 아닐까…?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대부분 생계를 위해 사기업에 들어가 연구하는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기업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실 생활은 어쩌면 축복은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벨 연구소는 현대에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국가 연구소나 사기업 연구소와는 다른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벨 연구소가 가지는 태생과 더불어 그 당시의 시대상과도 연관이 있다. 전화가 발명된 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전화 사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단일화 되지 않은 시스템은 비효율을 낳았다. AT&T는 이 와중에 “하나의 정책, 하나의 시스템, 세계적인 서비스”라는 표어를 걸고 수많은 독립 전화 회사들을 인수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 제일가는 독점 회사가 되었다. 오늘 날의 MS의 예와 같이 국가에서는 어느 분야의 독과점을 막는 것이 정상이나, 통일된 전화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명목 하에 통신분야의 독점은 용납되었다. 이렇듯 정부와 벨 연구소가 속한 AT&T는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서로에게 윈윈(Win-Win)이 되었고, 벨 연구소는 독점에서 비롯된 넘치는 자본으로 금전적으로 부담 없이, 그리고 연구에 대한 실적부담 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는 한창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쟁의 전황이 급박해지면서 ‘미지에 대한 추구’로 정의되었던 과학 연구가 ‘과학을 응용하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인식이 전환되었던 시기였다. 전쟁으로 인해 기존에 확립된 과학, 공학, 사업의 표준이 뒤집히고 현실적인 기술의 난제를 해결하는 일에 박차가 가해지면서, 기초과학을 넘어선 공학 연구의 결과물로 트랜지스터와 같은 발명품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발명이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한 개인이 혼자서 순간적인 영감으로 결과물을 얻어낸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을 발전시키는 기술적 도약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에는 각 개인의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발명과 관련된 힘이 수렴되기 시작하고, 그 현상이 몇 달 또는 몇 년 또는 몇십 년에 걸쳐 점점 뚜렷해지고 빨라지면서 다른 아이디어와 관계자의 도움이 추가된다. 여기에 우연찮은 요소들이 결합되고, 그러고 나서야 때때로 도약이 이뤄진다. 이러한 도약은 나중에 뒤돌아봐야 비로소 뚜렷이 보인다.
당대에 벨 연구소가 아무런 부담 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유일한 연구소인 점도 작용했겠지만, 벨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그 당시 가장 전도유망하고 지식적으로도 결코 뒤떨어질 일이 없는 인물들이 모이면서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킨 점이다. 그래서 인지 1940년대 이후 AT&T의 독점이 무너지면서 안정적인 재정이 끊기고 뛰어난 인재들이 하나 둘 연구소를 떠나면서 그러한 시너지효과가 사라지면서 트랜지스터와 같은 세상에 변혁을 가져올만한 뛰어난 기술의 발전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 날에도 벨 연구소는 존재하지만, 당시의 문화와 목적 그 자체는 전혀 다르게 남아 있다. 벨 연구소의 자유로운 연구와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전자공학, 통신학 등이 시너지를 일으켜내며 세상을 바꿀 기술을 만들어내는 그 문화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현재 벨 연구소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단 4명뿐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도 벨 연구소 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기업 연구소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자사의 수익을 최우선 하는 기술을 만드는데 매진하기 때문에 벨 연구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AT&T의 벨 연구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익재단의 성격도 강했기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 사회와 공유하였고, 트랜지스터와 같은 기술들은 세계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꿨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권장되었다는 벨 연구소. 실적부담 없이 과학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그 시기의 벨 연구소는 연구를 하는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향이 아닐까…?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대부분 생계를 위해 사기업에 들어가 연구하는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기업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실 생활은 어쩌면 축복은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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