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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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기록할 종이 조차 발명되지 않았을 기원전 수세기. 자신만의 사유를 펼쳐나간 위대한 사상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국가, 인간, 우주의 광대한 비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철학적 주제에 대해 그들의 사유가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경험한 현실이 현재에도 진행형이라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색했던 그들의 방법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철학서는 어렵다는 편견을 무참히 깨주었던 철학자 ‘강신주’. 고금의 철학서를 종횡으로 넘나드는 그의 필력에 이끌려 나는 어느새 고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 12권으로 기획된 ‘제자백가의 시대’의 제 2권인 ‘관중과 공자’편도 역시나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 1권인 ‘철학의 시대’에서 제자백가 철학이 태동했던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았다면 2권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상가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 첫 번째는 관중과 공자라는 두 사상가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를 다루는 지배적인 연구 경향은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 나아가 중국철학의 시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든다. 그것은 관중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전국시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의 이상향으로 생각된 인물임에 반하여 공자는 본인 생전에 단 한번도 자신의 사상적 영향을 제대로 행사해 본적 없는 불운한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관중(~B.C. 645)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 국가로 만든 재상이다. 관중의 중요성은 그가 바로 국가의 철학자로서 최초로 성공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제자백가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의 번영이나 사회의 평화를 정치철학적 주제로 숙고했던 ‘국가 철학자’였다. 거의 모든 제자백가는 국가가 어떤 이념에 의해 조직되어 기능해야 가장 효율적인지를 고민했다. 따라서 제자백가에 대한 논의를 공자가 아닌 관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시 사상적 주류가 유학이었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정치철학적 관심에 기반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관중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상인, 관료, 그리고 군인으로써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오히려 그로부터 삶에 대한 현실감각을 체득할 수 있었다. 더욱이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한때 훗날 패자가 된 환공의 원수가 되기도 하지만 관중의 능력을 알아본 포숙의 도움으로 그는 제나라의 재상으로 다시 화려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의 도움으로 기원전 667년 마침내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환공이 최초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냉철한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에 기인한다. 먼저, 관중은 어떤 사상가보다도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중요성을 절감한 정치가였다. 국가 경제력과 국방력의 토대는 민중의 경제적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민중들의 경제적 삶을 안전하게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발적 복종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즉 이데올로기적 통치술은 결국 민중에게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준 뒤에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반해 공자가 지닌 민중에 대한 인식은 관중의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자는 민중을 물질적 토대 없이도 지배층의 도덕적 행실에 반응하여 복종하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지배 계층이 서주 시대의 행위규범이었던 ‘예’를 복원하여 성실히 따르면, 민중은 지배계층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자의 정치철학적 제안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 지기 힘들었다. 그것은 공자의 제안이 자신들의 꿈이었던 부국강병의 길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제후에게 팔리기를 원했던 자신의 사상이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에 이르러 보수 지배층의 기득권을 지키는 논리로 소비되어 지금의 영향력을 떨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유학이 어떻게 양반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지배이념으로 활용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며 주류사회에 편입되기를 소망하던 공자는 말년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온전히 ‘고상한’ 관념 철학으로 변질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의 시선을 통해 본 공자는 더 이상 동양철학에서의 신으로까지 추앙되는 성인이 아닌 불운하고 시대착오적인 한 명의 사상가일 뿐이다. 특히나 책 말미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평생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던 순진한 사상가”로 평가할 정도로 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냉혹하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민중의 시선에서 삶과 정치를 사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자 사유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정치철학자로서의 관중의 부각과 맞물려 역사적 포장에서 발가벗겨진 공자와의 대면을 통해 저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락 중간중간에 이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가 제시되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이어지는 연작을 조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철학서가 아닌 잘 각색된 역사서를 읽는 것과 같은 흥미진진함. 일반인의 통념과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사적 해석. 이러한 것들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힘.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철학서는 어렵다는 편견을 무참히 깨주었던 철학자 ‘강신주’. 고금의 철학서를 종횡으로 넘나드는 그의 필력에 이끌려 나는 어느새 고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 12권으로 기획된 ‘제자백가의 시대’의 제 2권인 ‘관중과 공자’편도 역시나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 1권인 ‘철학의 시대’에서 제자백가 철학이 태동했던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았다면 2권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상가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 첫 번째는 관중과 공자라는 두 사상가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를 다루는 지배적인 연구 경향은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 나아가 중국철학의 시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든다. 그것은 관중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전국시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의 이상향으로 생각된 인물임에 반하여 공자는 본인 생전에 단 한번도 자신의 사상적 영향을 제대로 행사해 본적 없는 불운한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관중(~B.C. 645)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 국가로 만든 재상이다. 관중의 중요성은 그가 바로 국가의 철학자로서 최초로 성공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제자백가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의 번영이나 사회의 평화를 정치철학적 주제로 숙고했던 ‘국가 철학자’였다. 거의 모든 제자백가는 국가가 어떤 이념에 의해 조직되어 기능해야 가장 효율적인지를 고민했다. 따라서 제자백가에 대한 논의를 공자가 아닌 관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시 사상적 주류가 유학이었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정치철학적 관심에 기반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관중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상인, 관료, 그리고 군인으로써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오히려 그로부터 삶에 대한 현실감각을 체득할 수 있었다. 더욱이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한때 훗날 패자가 된 환공의 원수가 되기도 하지만 관중의 능력을 알아본 포숙의 도움으로 그는 제나라의 재상으로 다시 화려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의 도움으로 기원전 667년 마침내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환공이 최초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냉철한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에 기인한다. 먼저, 관중은 어떤 사상가보다도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중요성을 절감한 정치가였다. 국가 경제력과 국방력의 토대는 민중의 경제적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민중들의 경제적 삶을 안전하게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발적 복종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즉 이데올로기적 통치술은 결국 민중에게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준 뒤에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반해 공자가 지닌 민중에 대한 인식은 관중의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자는 민중을 물질적 토대 없이도 지배층의 도덕적 행실에 반응하여 복종하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지배 계층이 서주 시대의 행위규범이었던 ‘예’를 복원하여 성실히 따르면, 민중은 지배계층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자의 정치철학적 제안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 지기 힘들었다. 그것은 공자의 제안이 자신들의 꿈이었던 부국강병의 길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제후에게 팔리기를 원했던 자신의 사상이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에 이르러 보수 지배층의 기득권을 지키는 논리로 소비되어 지금의 영향력을 떨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유학이 어떻게 양반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지배이념으로 활용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며 주류사회에 편입되기를 소망하던 공자는 말년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온전히 ‘고상한’ 관념 철학으로 변질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의 시선을 통해 본 공자는 더 이상 동양철학에서의 신으로까지 추앙되는 성인이 아닌 불운하고 시대착오적인 한 명의 사상가일 뿐이다. 특히나 책 말미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평생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던 순진한 사상가”로 평가할 정도로 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냉혹하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민중의 시선에서 삶과 정치를 사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자 사유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정치철학자로서의 관중의 부각과 맞물려 역사적 포장에서 발가벗겨진 공자와의 대면을 통해 저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락 중간중간에 이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가 제시되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이어지는 연작을 조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철학서가 아닌 잘 각색된 역사서를 읽는 것과 같은 흥미진진함. 일반인의 통념과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사적 해석. 이러한 것들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힘.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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