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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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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6,439회 작성일 12-08-0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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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여행으로 가슴에 품은 꿈을 실현하려 세상의 여기저기를 방황한 그리스의 위대한 거인 니코스 카찬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가 과거 탄광사업을 하다 만난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실존인물에 자신의 경험을 살로 붙여 만든 소설이다. 책 표지의 일러스트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글이 상당이 묵직해서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가끔 등장하는 주옥 같은 어록과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조르바의 마력이 없었다면 아마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배경인 그리스에 속하지만 화산분출로 외로이 떨어져 섬이 된 크레타,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산 토리니가 있는 곳이다. 광범위하게 그리스를 얘기하자면 문학과 예술의 토대가 된 그리스 신화와 고대 올림픽의 나라이고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국민들에게 추앙받는 민족음악가 테오도라 키스의 나라이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국제금융위기의 절벽아래로 추락하여 잦은 경제적 분쟁과 갈등이 심화된 곳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심을 흔들던 바람둥이인 조르바가 환갑이 넘어 탄광업자와 함께 이곳 크레타로 넘어와 저자인 ‘나’를 만나면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지난 날 스스로 이룬 업과 행적들의 무가치함을 느끼던 ‘나’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갈 용기조차 가지지 못해 대책 없이 매너리즘에 짓눌려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조르바라는 인물은 충격적이고, 또 매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중력이 이끄는대로, 관성의 법칙대로 가속도를 내며 삶이라는 숙제에 유연한 춤사위로 해결책을 찾을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중년에게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이성에 의해 지배받은 형이상학의 생을 살았지만 30살이나 연상인 조르바는 그의 추상적인 관념에 육체를 부여하는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조르바에게 육체는 짐은 진 짐승처럼 먹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먹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던 “나”는 조르바를 통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지 않음을 깨달아 가며 조금씩 그를 짓누르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이면서 책속의 ‘나’로 등장하는 카잔차키스는 평생 동안 그리스정교회 등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우리는 신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를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할아버지가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오며 이웃에게 가짜 성지순례 십자가를 선물해준 얘기, 자살한 자하리아의 머리털과 수염을 몽땅 깍아 꼭 카톨릭 신부처럼 만들어놓아 복수의 성처녀 성상 창 끝에 피를 묻혀놓아 수도원에서는 기적이라고 난리 치는 에피소드, 이 성상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헌금 걷으려는 수도승들, 수도원장의 네 번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첨탑과 케이블이 무너지는 에피소드 등으로 종교의 뒷모습을 희극적으로 그려냈다. 이로 인해 그는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하고 종교와 보수세력에 의해 생활은 악화되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마치 크레타 섬에서 만났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던 조르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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