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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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야히야 에머릭 지음
이슬람.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테러, 살인과 같은 매우 폭력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고 있는 사실 중에는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과 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잘못 주입된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종교를 17억 명의 사람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이 17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있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17억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종교인 이슬람과 이를 생활규범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마저도 왜곡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슬람 세계는 오랫동안 서구 기독교 세계의 ‘적’으로 간주되어 부정적인 평가만 받아왔으며, 우리도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인 결과 이슬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면이 많다. 나는 만들어진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왜곡된 사실이 아닌 이슬람 자체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슬람은 7세기에 발원한 이래로 현재까지 거의 14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함마드의 출생지인 메카에서 기원하여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 발칸 반도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까지 퍼져나간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무슬림 (이슬람을 믿는 신자를 일컬음)이 알라라고 부르는 유일신으로 시작된다. 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에서 유래하는데 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오로지 하나뿐인 유일한 신을 의미하며, 그 외의 다른 다양한 신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꾸란 (알라가 무슬림에 내린 성서) 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말하는 야훼나 하나님, 하느님과 알라가 동일한 존재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무슬림이 알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의 하느님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무엇이 알라이고 알라가 아닌지에 대하여 명확한 믿음에 바탕을 둔 무슬림의 생활양식은 도덕과 깨끗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모든 생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여기고 있었으며, 특히 방종한 생활에 대해 매우 엄격하였다.
내가 무슬림의 삶에서 가장 감명 받았던 것은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1. 샤하다: 알라에 대한 신앙고백, 2. 살라트: 일상적인 기도, 3. 자카트: 연례적인 자선 행동, 4. 사움: 한달 동안 지속되는 단식, 5.핫즈: 성지 순례) 하나인 “사움”이었다. 사움은 쉽게 말해 이슬람력 기준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 동안 단식을 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움을 통해 그들이 얻는 교훈은 헤아리기 힘들만큼 큰 것이었다. 먼저 배가 고프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더 깊은 동정심을 느낄 수 있고, 죽는다는 게 생각보다는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과 생명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크게 의지한다는 사실 등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더불어 동물적 욕구와 열정을 조절하는 법은 물론 진심으로 알라를 기억하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비우는 법을 익힐 수 있고,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면서도 기도, 용서, 자기 희생, 선한 행동에 힘쓰는 습관을 기르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의무들을 철저하게 지키고 살아가는 무슬림들이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약을 비롯하여 알코올, 담배, 섹스 등 인간의 순간적인 욕구조차 억제되지 못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30일 이나 되는 장기간에 걸친 무슬림의 사움의 의무는 어쩌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인간 본연의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부”를 바라보는 이슬람의 시각 또한 매우 감명 깊었다. 이슬람은 “부는 무거운 짐이며 책임이다” 라고하며,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이용하여 타인의 고통을 줄여줄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슬람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머지않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키며 부로 인해 마음의 욕구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교나 불교와 유사했다. 이슬람은 가난한 은둔자의 삶을 지지하지 않을뿐더러 부를 죄악시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이 샘솟을 수 있도록 재산에 대한 애착이 아닌 나눔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서거 했을 때 그의 유산이라고는 갈대 침대하나와 담요 한 장, 그릇 한 벌, 그리고 방패 한 개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가 상호작용해온 역사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현대에 와서도 9.11 테러와 슬픈 역사를 만들어 내며, 그 불신의 씨앗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 이슬람에 대한 불신과 정확한 지식의 부족, 그리고 이슬람의 대표라고 거짓말을 하며 일그러진 주장을 퍼뜨리는 극소수 신자들 때문에 무슬림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 심하게 왜곡되고 있으며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느낀 이슬람은 삶의 방식이자 수많은 무슬림이 일상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는 철학이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슬람에는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 있었고, 그 해답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과 정신, 영성의 힘을 강조하는 깨끗하고 맑은 규범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팽배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언론과 사회가 말하는 이슬람이 아닌 무슬림들의 삶을 더욱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이슬람.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테러, 살인과 같은 매우 폭력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고 있는 사실 중에는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과 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잘못 주입된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종교를 17억 명의 사람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이 17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있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17억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종교인 이슬람과 이를 생활규범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마저도 왜곡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슬람 세계는 오랫동안 서구 기독교 세계의 ‘적’으로 간주되어 부정적인 평가만 받아왔으며, 우리도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인 결과 이슬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면이 많다. 나는 만들어진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왜곡된 사실이 아닌 이슬람 자체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슬람은 7세기에 발원한 이래로 현재까지 거의 14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함마드의 출생지인 메카에서 기원하여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 발칸 반도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까지 퍼져나간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무슬림 (이슬람을 믿는 신자를 일컬음)이 알라라고 부르는 유일신으로 시작된다. 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에서 유래하는데 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오로지 하나뿐인 유일한 신을 의미하며, 그 외의 다른 다양한 신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꾸란 (알라가 무슬림에 내린 성서) 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말하는 야훼나 하나님, 하느님과 알라가 동일한 존재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무슬림이 알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의 하느님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무엇이 알라이고 알라가 아닌지에 대하여 명확한 믿음에 바탕을 둔 무슬림의 생활양식은 도덕과 깨끗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모든 생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여기고 있었으며, 특히 방종한 생활에 대해 매우 엄격하였다.
내가 무슬림의 삶에서 가장 감명 받았던 것은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1. 샤하다: 알라에 대한 신앙고백, 2. 살라트: 일상적인 기도, 3. 자카트: 연례적인 자선 행동, 4. 사움: 한달 동안 지속되는 단식, 5.핫즈: 성지 순례) 하나인 “사움”이었다. 사움은 쉽게 말해 이슬람력 기준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 동안 단식을 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움을 통해 그들이 얻는 교훈은 헤아리기 힘들만큼 큰 것이었다. 먼저 배가 고프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더 깊은 동정심을 느낄 수 있고, 죽는다는 게 생각보다는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과 생명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크게 의지한다는 사실 등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더불어 동물적 욕구와 열정을 조절하는 법은 물론 진심으로 알라를 기억하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비우는 법을 익힐 수 있고,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면서도 기도, 용서, 자기 희생, 선한 행동에 힘쓰는 습관을 기르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의무들을 철저하게 지키고 살아가는 무슬림들이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약을 비롯하여 알코올, 담배, 섹스 등 인간의 순간적인 욕구조차 억제되지 못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30일 이나 되는 장기간에 걸친 무슬림의 사움의 의무는 어쩌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인간 본연의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부”를 바라보는 이슬람의 시각 또한 매우 감명 깊었다. 이슬람은 “부는 무거운 짐이며 책임이다” 라고하며,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이용하여 타인의 고통을 줄여줄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슬람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머지않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키며 부로 인해 마음의 욕구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교나 불교와 유사했다. 이슬람은 가난한 은둔자의 삶을 지지하지 않을뿐더러 부를 죄악시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이 샘솟을 수 있도록 재산에 대한 애착이 아닌 나눔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서거 했을 때 그의 유산이라고는 갈대 침대하나와 담요 한 장, 그릇 한 벌, 그리고 방패 한 개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가 상호작용해온 역사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현대에 와서도 9.11 테러와 슬픈 역사를 만들어 내며, 그 불신의 씨앗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 이슬람에 대한 불신과 정확한 지식의 부족, 그리고 이슬람의 대표라고 거짓말을 하며 일그러진 주장을 퍼뜨리는 극소수 신자들 때문에 무슬림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 심하게 왜곡되고 있으며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느낀 이슬람은 삶의 방식이자 수많은 무슬림이 일상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는 철학이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슬람에는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 있었고, 그 해답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과 정신, 영성의 힘을 강조하는 깨끗하고 맑은 규범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팽배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언론과 사회가 말하는 이슬람이 아닌 무슬림들의 삶을 더욱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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