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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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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택용
댓글 0건 조회 6,459회 작성일 12-09-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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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 윌 헌팅’은 1997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인 맷 데이먼(윌)과 로빈 윌리엄스(숀) 그리고 그 외 많은 스타들이 출연하여 굉장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지금까지 명작으로 칭송될 수 있었을까. 철없던 시절 주인공의 천재성에 단순한 부러움만을 느꼈던 기억이 아련한 이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 다시 한 번 접한 현재의 내게 많은 생각을 갖도록 해준 것을 보니 명작이라 인정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빈민 거주지역에서 사는 주인공 윌은 수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해박하고 천재적 지능을 소유하고 있지만 어릴 적 버림받았던 상처로 인해 절친한 친구 셋을 제외한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감추고 방어하기 위해 폭력성과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러던 중,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의 뛰어난 천재성을 알아챈 저명한 MIT 수학교수인 랭보는 윌의 재능을 키어주고자 제자로써 받아들인다. 하지만 윌의 거만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못마땅해 하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위해 심리학자이며 자신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숀교수에게 정신과 치료를 부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국 숀교수에게 마음을 열고 깨달음을 얻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이 영화는 교육, 인생, 진로, 우정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윌과 그의 멘토 역할을 하는 친구 처키, 랭보와 숀 교수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매일 아침 집문을 두들겨 윌을 깨워 막노동일을 하는 친구 처키는 닫혀진 마음을 가진 윌이 진정 믿을 수 있었던 단 한명의 사람이다. 평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사는 것처럼 그려지는 처키지만 랭보와 숀 교수의 도움을 버리고 뛰쳐나온 윌을 다시 돌아가게 만든 결정적인 인물도 친구 처키였다. 친구의 재능을 알아보고 늘 함께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감수하면서 까지 비장하게 현실적 조언을 해준 처키의 대사는 아직도 머릿속을 맴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친구. 일생을 살면서 그런 친구를 몇 이나 볼 수 있을까.

상처받고 닫힌 윌의 마음을 열게 만든 숀 교수는 좋은 멘토링의 예를 보여주었으며 참교육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숀은 윌과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만남까지 그에게 무엇을 강요하거나 주입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주어진 시간동안 윌이 자신을 내비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숀은 ‘대화’로써 교육을 시도한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주인공 윌이 그러한 숀의 교육적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폄하하고 조롱한다. 의도적으로 숀의 마음을 떠보는 질문을 하거나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마치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한다. 분명 윌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천재적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숀을 통해 그는 단지 자신이 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윌을 숀 교수는 이해하며 역지사지의 태도로 다가가고 자신도 유사하게 겪었던 과거의 아픔과 후회를 통해 자신을 닮은 윌에게 그동안 깨달아온 교훈을 알려준다. 그럼으로써 그가 가진 불완전함을 윌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 이를 계기로 윌은 숀을 포함해 타인들에게 쌓아놓았던 차가운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나가기 시작하고 자신을 완전히 보여줌으로써 스승인 숀을 신뢰하여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영화속에서 숀은 단 한번도 윌에게 답을 요구하거나 주입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윌 자신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결국 나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깨닫는 과정이다. 일방적인 정보나 지식의 전달로도 가능하겠지만 대화와 진심으로서 다가가 피교육자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는 숀 교수만의 교육 방식은 진정한 참 교육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안타깝게도 숀과 대립적이며 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등장하는 랭보 교수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또 다른 윌의 멘토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집념과 자신감이 넘쳐나고 자존심 또한 강한 성격의 랭보이지만 자신 또한 쉽게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간단히 풀어버리는 윌을 보며 순수히 감탄하고 그의 재능을 키워주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아니었으면 영화 끝의 윌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틀에 가두려 하는 것에 있어 숀과는 교육방식에 큰 차이를 가지지만 말이다. 그는 마치 스승의 위치인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영광을 느끼는 사람과 같이 자신을 무시하고 거만한 모습을 보이는 윌을 포기하지 않고 처절하게 아끼고 위한다. 판사에게 부탁하여 윌이 있어야 했던 어두운 감옥에서 나오게 해주었으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던 친구 숀에게까지 정신과 상담을 부탁하고, 윌이 자신을 짓밟으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윌에게 끝까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그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묻힐 뻔 했던 윌. 그러나 인생의 멘토인 두 명의 교수와 친구를 만나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본 ‘굿 윌 헌팅’의 감상은 주인공 윌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었다. 진정한 인생에 있어서의 행복과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인생의 멘토의 중요성, 진정한 교육, 어떠한 모습도 사랑해주고 함께 해줄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굿 윌 헌팅’은 종종 인생의 갈림길에서 마음이 심란할 때 찾아서 또 보고 싶은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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