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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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고도의 철학적 사유가 익숙한 그들에게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텍스트를 써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책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자신만의 언어로 쉽게 버무려서 독자들이 먹기 편하게 요리한다. 그것은 동양철학을 전공한 그가 동서양철학을 막론하고 그것에 일정부분 통달하기도 했거니와 투박하고 딱딱한 철학적 개념과 이론을 특유의 감수성으로 잘 감싸안을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래서 강신주 선생이 쓴 책은 대부분 찾아서 읽으려 한다. 아니 굳이 애써 읽으려 하지 않아도 책을 펴는 순간 마치 한편의 잘 쓰여진 소설책,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다 읽기 전에는 책을 내려 놓기 힘들다. 이번에 선생이 쓴 ‘철학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제자백가 철학자들의 사유를 집대성할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제 1권으로써 각 철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기 전에 그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알아가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어떠한 위대한 사상도 결코 무에서 창조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사유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태동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중국 역사의 기원은 신화 시대를 포함하여 삼황오제로부터 시작된다. 삼황이란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 세 군주를 가르키고, 오제란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의 다섯 군주를 가르킨다. 사마천의 사기를 살펴보면 중국은 오제의 시기를 끝마치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로 이어지는 세습왕조의 시대로 들어간다. 기원전 770년경 주나라는 견융이란 서북방 부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수도를 서쪽의 호로부터 동쪽의 낙읍으로 이전한다. 역사가들은 낙읍으로 수도를 이전하기 이전의 시기를 서주 시대로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를 동주 시대로 구분한다. 동주 시대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의해 천하가 통일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이 시기가 바로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혼란의 시기이다.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공자가 지은 춘추라는 역사서에서 유래한 것이고 전국 시대라는 명칭은 전국책이라는 역사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시대가 주나라에 속했던 170여 개의 제후국이 본격적으로 패권을 다툰 시대였다면, 전국 시대는 기원전 481년을 기점으로 경쟁에서 최종 승리한 7개의 제후국이 하나의 최종 승자의 자리를 다투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춘추전국시대는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쟁의 시대였던 셈이다.
이러한 전쟁과 살육의 시대이자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춘추전국시대를 새로운 사유와 논리로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들을 우리는 제자백가라 부른다. 그들은 민중이 고통과 상처로 신음하던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지적 모색을 쉬지 않았다. 그들의 사유는 국가주의부터 아나키즘까지, 우주의 광대한 질서부터 인간의 깊숙한 내면까지, 그리고 논리학부터 수사학까지 미치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제자백가라 부르고 그들이 제시했던 사유를 통틀어 백가쟁명이라고 한다.
수천 년전 고대 중국의 모습은 분명 현재의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렇게 오래된 동양 고전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것은 2000년 전 중국인들이 경험한 현실이 오늘날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권력욕과 정복욕, 그리고 그로 인해 온갖 핍박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민중의 삶을 보면 끈덕지게 과거 현재를 오가며 동일한 구조가 교차되고 있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혼란의 춘추전국시대를 정면으로 맞섰던 제자백가의 치열했던 삶이, 그리고 그들의 사유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학의 보고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동양문화의 정수는 인간학에 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활짝 피웠기 때문이다. 제가백가가 제창한 도를 이루는 방법론은 제각각 달랐을 지라도 그 뿌리는 어떻게 하면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관심에 기반한다. 강신주 선생의 농익은 식견과 안목이 가미된 제자백가의 다음 일대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래서 강신주 선생이 쓴 책은 대부분 찾아서 읽으려 한다. 아니 굳이 애써 읽으려 하지 않아도 책을 펴는 순간 마치 한편의 잘 쓰여진 소설책,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다 읽기 전에는 책을 내려 놓기 힘들다. 이번에 선생이 쓴 ‘철학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제자백가 철학자들의 사유를 집대성할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제 1권으로써 각 철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기 전에 그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알아가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어떠한 위대한 사상도 결코 무에서 창조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사유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태동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중국 역사의 기원은 신화 시대를 포함하여 삼황오제로부터 시작된다. 삼황이란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 세 군주를 가르키고, 오제란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의 다섯 군주를 가르킨다. 사마천의 사기를 살펴보면 중국은 오제의 시기를 끝마치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로 이어지는 세습왕조의 시대로 들어간다. 기원전 770년경 주나라는 견융이란 서북방 부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수도를 서쪽의 호로부터 동쪽의 낙읍으로 이전한다. 역사가들은 낙읍으로 수도를 이전하기 이전의 시기를 서주 시대로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를 동주 시대로 구분한다. 동주 시대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의해 천하가 통일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이 시기가 바로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혼란의 시기이다.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공자가 지은 춘추라는 역사서에서 유래한 것이고 전국 시대라는 명칭은 전국책이라는 역사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시대가 주나라에 속했던 170여 개의 제후국이 본격적으로 패권을 다툰 시대였다면, 전국 시대는 기원전 481년을 기점으로 경쟁에서 최종 승리한 7개의 제후국이 하나의 최종 승자의 자리를 다투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춘추전국시대는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쟁의 시대였던 셈이다.
이러한 전쟁과 살육의 시대이자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춘추전국시대를 새로운 사유와 논리로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들을 우리는 제자백가라 부른다. 그들은 민중이 고통과 상처로 신음하던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지적 모색을 쉬지 않았다. 그들의 사유는 국가주의부터 아나키즘까지, 우주의 광대한 질서부터 인간의 깊숙한 내면까지, 그리고 논리학부터 수사학까지 미치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제자백가라 부르고 그들이 제시했던 사유를 통틀어 백가쟁명이라고 한다.
수천 년전 고대 중국의 모습은 분명 현재의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렇게 오래된 동양 고전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것은 2000년 전 중국인들이 경험한 현실이 오늘날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권력욕과 정복욕, 그리고 그로 인해 온갖 핍박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민중의 삶을 보면 끈덕지게 과거 현재를 오가며 동일한 구조가 교차되고 있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혼란의 춘추전국시대를 정면으로 맞섰던 제자백가의 치열했던 삶이, 그리고 그들의 사유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학의 보고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동양문화의 정수는 인간학에 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활짝 피웠기 때문이다. 제가백가가 제창한 도를 이루는 방법론은 제각각 달랐을 지라도 그 뿌리는 어떻게 하면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관심에 기반한다. 강신주 선생의 농익은 식견과 안목이 가미된 제자백가의 다음 일대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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