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당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얼마나 알고 있는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146회 작성일 14-04-11 12:16

본문

< 당신들의 대한민국 >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테두리 밖에서 보면 너무나 쉽게 보이지만 그 안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면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가 그렇듯이 나 또한 그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과 행동은 너무도 편협하고 한국사회의 병폐에 젖어 살고 있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저자인 박노자는 전근대적인 우상숭배,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영어공용화론의 망상, 한국식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의 문제 등 많은 것을 던져준다.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 전근대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문구는 남북 분단의 특수 상황 속에서 어느 덧 너무도 당연하게 금기시 되어 버렸다. 이러한 우리 사회 속에서 국가주의를 넘어서자는 담론을 꺼낸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에서 바라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한국인은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하는 국민이 참 많았다. 나는 박정희 정권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고, 그저 그가 이룩한 경제 성장의 혜택 속에 현재 내가 살고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사회에 남긴 박정희의 어두운 유산을 보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는 외자와 기술 도입, 소비재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대한민국의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결과적으로 대미․대일 의존성을 절대화 시켰다는 것에 동감했다. 박정희는 외자를 도입하기 위해 일제 치하의 36년 세월을 너무 쉽게 잊었다. 그가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가 겪은 일제 치하 36년, 고통의 나날에 대한 대가로 받은 몇 억불로 우리의 경제가 지금 여기에 있음은 우리 모두 자각해야 할 일이다. 또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베트남에서 벌어 온 피의 대가 - 경부고속도로’는 우리 산업 발전의 초석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땅의 젊은이가 피의 대가로 벌어들인 정당한 외화인가. 그것은 다시 말하면 베트남 국민들의 피의 대가이다. 책 후반부에서 언급된 민족주의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사 전반의 이면을 생각하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윤관 여진 정벌에서 이면은 야인들의 고통이었으며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면에는 베트남 국민들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사대주의와 오랑캐에 대한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외화 벌이와 종주국의 눈치를 자기 민족의 피보다 훨씬 더 중시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지적한다.

박정희는 ‘민족전통’으로 가장한 사무라이식 ‘충효사상’을 교육했으며 그 목적은 장기 집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권 정통성을 위해 이순신 장군을 이용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 그리고 임진왜란이 바로 국민 총동원의 필요성으로 연상되고, 어떻게든 정권의 불법 찬탈과 노동자, 농민의 일반적인 희생을 합리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군국주의 역사에의 편입의 의미로서 군부독재의 정통성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다. 그 산물이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평양의 김일성 동상과 비교하며 그 둘은 전근대적 가치와 상징에 호소하는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언제나 북한보다 살기 좋은 민주주의 사회임을 인정했던 나로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 저자는 ‘영어공용화’가 통일을 이뤄야 하는 시점에서 영어교육을 남한의 자녀들처럼 배울 형편이 안 되는 그들과의 이질성을 심화시킬 것이고, 일반 시민들은 점점 한글을 등지게 되며 우리나라 안에서도 빈민은 더욱 빈민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영어라는 언어가 세계적 대세이기 때문에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중국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빈도가 높다면 그 언어를 다시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은 것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국민이 각자 경제적인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이러한 영어 습득 능력까지 국가가 정책으로 추진한다면 그것은 선진화가 아니라 사대주의로 가득 찬 조공국이 되어 종주국의 언어구사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나라는 영어컴플렉스를 가져야만 하며, 프랑스처럼 자국 언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지, 그것도 바로 국제적 힘의 논리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한국 역사교과서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의 자주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삭제한 내용들, 편협한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교과서 대신 실제적인 역사교육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사회의 각종 병폐를 뿌리 뽑는 출발이 교육에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고, 일본 자체에 대한 반발감을 크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는 아마도 일본 교과서나 우리나라 교과서나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출신의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놀라고 부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훌륭한 한국어를 쓰고 있고, 나보다 한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의 말을 100% 동감할 필요는 없지만, 그가 제시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면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지적한 날카로운 우리 사회의 모순은 짧게는 몇 십 년, 길게는 몇 백 년의 전통 내지는 관습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뿌리까지 썩어버린 우리 사회는 경제 대란, 권력층의 부정부패 등으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러한 것은 한 가지 뿌리에서 자라난 썩은 결실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해결책을 너무도 국지적으로 찾아왔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들이 실제 우리 사회 내면 깊숙이 박혀있음을 인정하고, 그 뿌리를 뽑고 새로운 씨를 뿌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