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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 박범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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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대율
댓글 0건 조회 6,208회 작성일 14-04-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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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감상에 젖어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영화, 드라마를 찾아보게 되었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평소에 좋아했던 여배우인 홍수현이 출연한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외등’이라는 제목의 단편 드라마였는데 화면의 색채, OST,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우러져 보는 동안 눈물이 고이곤 했다. 드라마는 군사독재 정권 때 사형을 당한 좌파 지식인의 아들로 자라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벗고자 형사가 된 영우와 그의 이복동생 재희, 재벌의 아들로 권위주의적인 상규, 일본군 위안부의 딸로 태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혜주와 그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를 다뤘고 특히 영우, 상규, 혜주 사이의 20여년에 걸친 삼각관계 속에서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드라마는 자유기고가로 자라난 재희가 자신의 이복 오빠인 영우의 사망소식을 듣고 사망 장소를 찾아갔고 그 곳이 혜주가 있던 입원해 있던 병원이 멀리 보이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고 혜주를 찾아가 만나게 되면서 영우, 상규, 혜주 사이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해갔다. 짧게 요약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영우와 혜주는 진정 가슴으로 와 닿는 사랑을 이어갔고 상규는 혜주를 혼자 좋아하며 자신의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서툰 사랑의 표현과 혜주를 갖겠다는 욕망을 표출해냈다. 시간이 흘러 세 주인공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혜주 어머니인 서산댁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살림이 어려워진 혜주가 재벌가인 상규의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상규는 혜주를 갖겠다는 욕망을 폭행 등의 잘못된 방법으로 나타냈고 혜주와 영우는 밀회를 가지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혜주와 영우의 아이가 생기게 되고 혜주는 이를 상규의 자식으로 속인 채 출산을 하게 된다. 이 후, 혜주는 유전적인 이유로 시력을 잃게 되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영우는 입원해 있는 혜주가 보이는 근처 산으로 가 밤새도록 눈을 맞으며 혜주를 향한 외등을 깜빡이며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영우의 각막을 통해 혜주는 시력을 찾게 된다. 짧게 요약하느라 많은 내용이 빠지긴 했지만, 영우와 혜주의 닿을 수 없는 애달픈 사랑이 그려진 드라마라고 보면 될 듯하다.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 이 드라마의 원작이 소설가 박범신의 ‘외등’이라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짧은 드라마에서 담지 못한 에피소드들과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더 섬세하게 다루었다. 다른 부분은 드라마와 유사했지만 책에는 혜주가 경제적인 이유와 현실 도피적인 측면에서 택한 상규와의 결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잠시나마 풍족한 경제적 상황에 대한 기대로 상규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내용도 다루고 있다.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이토록 어리석고 약한 존재라는 것에 씁쓸한 표정이 지어졌다. 이 외에도 상규가 기업의 부도로 인해 자살을 택하는 부분 등에서 작가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커버하는 시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90년대 까지다. 정신대 출신의 혜주 어머니와 혜주의 비참한 삶, 좌파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탓에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영우와 그 멍에를 벗어나기 위해 형사라는 직업을 택하고 발버둥 쳤던 그의 불쌍한 삶, 친일 행위를 통해 부를 얻게 된 상규의 집안 등을 통해 작가는 일제의 앞잡이들이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이야기 하고 싶어 했고 또 상규의 자살을 통해 작품으로 그나마 여기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풀려고 했던 것 같았다. 또한 혜주와 영우의 삶을 불쌍하고 비극적으로 그렸지만 둘 사이의 사랑 그 자체를 그 무엇보다 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책에서 혜주는 영우에게 ‘상규한테 가버린 자신(혜주)에게 왜 화를 내지 않느냐’고 질문을 한다. 이 때 영우는 ‘사랑이 앞서 나가기 때문에 화낼 겨를조차 없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이 후에 자신의 죽음으로 혜주에게 각막까지 주는 영우의 지독한 사랑과 용기에 다시 한 번 내 가슴이 뭉클해지도록 만들었다.

  이 작품은 섬세한 심리 묘사 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에 걸쳐 가진자와 없는자의 대비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문학의 역할로서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연구실 사람들에게 시간이 된다면 책을 읽는 것을 진정으로 권하고 싶지만, 넉넉지 않을 경우엔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이 작품은 꼭 접해보는것을 추천하며 감상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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