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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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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6,318회 작성일 14-04-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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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과 실적을 보여준 CEO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정보기술 등 산업 전반에 창의적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며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탁월한 경영성과를 보여준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잡스는 그의 회고록에서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애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애플의 힘은 인문학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른바 여타의 이질적인 다른 것을 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통섭이다.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후, 요즘 우리 사회에도 창의적인 통섭형 인간이 화두다. 전혀 접합점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자연과학과 예술의 영역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통섭형 천재에 대한 요구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에게 통섭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 과학자를 꼽자면 이화여대에 최재천 교수가 아닐까 싶다. 평소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알려진 그가 낸 책 ‘과학자의 서재’를 보면 통섭이라는 키워드에 가까운 실천적 삶을 살아온 그의 성장기를 만나볼 수 있다.

과학자의 서재는 언뜻 보면 과학분야에 국한된 책 소개를 목적으로 하는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자연을 사랑했던 한 소년이 이름난 과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회고록에 가깝다. 그의 어린 시절과 학문의 길을 살펴봄으로써 청소년들의 미래 설계에 도움을 주고자 쓰인 책인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자신의 과거사를 솔직하게 써내려 가는 그의 입담이 자못 친근하다. 책이 제법 두껍기는 하지만 소설보다 좀 더 넉넉하게 쓰여진 줄 간격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게 만든다.

하버드대 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그도 어렸을 적에는 시인과 조각가를 꿈꾸었던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적 대부분의 시기를 강릉에서 보낸 그는 부모님의 교육열로 인해 서울로 이사하여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마음은 늘 고향 강릉의 자연을 그리워했다. 서울에 있을 때도 공부보다는 문학과 미술에 깊이 빠졌고 등 떠밀리듯 입학한 동물학과에서도 그의 인생적 방황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물학이라는 학문에 인생을 받칠만한 정당성을 부여해 준 한권의 책과 더불어 인생의 중요한 멘토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 언뜻 시간 순으로 그려지는 그의 이야기가 여타의 성장소설과 비슷해 지루할 것처럼 보이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의미 있는 책들과 엮어내는 그의 글 솜씨에 젖어 들다 보면 그런 의심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인과 조각가라는 꿈을 키우다 과학자가 된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매우 큰 울림을 준다. 방황은 실패가 아니며 ‘자기답게 사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자기 인생의 확고한 뿌리가 되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강릉에서의 삶이 그랬고 청소년기 문학과 미술에의 심취가 그랬다. 그것은 결국 통섭의 정신을 설파하는 현재의 그를 완성시킨 철학적 본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최재천 교수의 미국 유학시절 얘기가 나온다. 연구분야와 주제가 다르긴 하지만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대학원생으로써 몇 가지 유용한 팁(?)도 쓰여있어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정평이 나와있는 만큼 책 말미에 과학자로서의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더불어 훌륭한 글쓰기를 위한 실질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식에서 물려준 가장 큰 자산이 바로 책 읽는 습관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차가운 증명과 무한실험에 그치는 과학자가 아닌, 감성 풍부하고 철학적이고, 마음 따뜻한 과학자가 되고자 했다던 최재천 교수.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연구자라는 같은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 보게 만든다. 얼마 전 ‘통섭의 식탁’ 이라는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 책도 놓치지 않고 챙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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