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된 현대사회에서 기계화되는 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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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적 세계상과 근대과학. ‘사람과 사회를 기계로 볼 수 있는가’
얼마 전 전자과 Key Seminar의 연사로 초청된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님의 강연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그렇고 일반적인 ‘경제연구소’의 소장이 그저 그런 뻔한 경제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갈 줄 알았다. 부제목으로 ‘사람과 사회를 기계로 볼 수 있는가’라는 어딘가 경제학적이지 못한 문장을 붙여놓았기에 어떤 강연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요즘 시대에는 금융공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엄청 복잡한 수식과 눈 돌아가는 경제이론들을 통해 뭐든지 수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age)사태가 일어 나기 전에 다양한 Fancy한 금융지식과 공식을 통하여 돈을 빌려간 저소득층이 일년을 납기하고 몇 년 뒤에 몇 번째 납기를 하지 못하고 파산할 확률마저 계산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금융 상품까지 만들어서 판매할 정도로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전세계가 미국발 경제위기에 의해 휘청였고 당시에 경제학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은 빗발쳤다. 그렇게 당당하던 금융공학과 경제법칙의 정교함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었고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회의론적인 비판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실제 연사로 왔던 홍기빈 소장도 경제학자로서 물리학자에게 ‘경제학도들이 실제 측정할 수 있는 Data는 무엇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 고민해 본 결과, ‘별로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통화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 같은 경제학적인 수치도 제대로 측량하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통화량을 통한 물가조절방법은 경제학자들이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포기했으며 그 이후로 등장한 것이 금리조절에 따른 물가조절이라고 했다. 이렇듯 간단해 보이지만 결국 측량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개념이 경제학에는 정말 많고 사람 사는 세상이 V=IR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사람들과 그 사람 사는 세상을 modeling함에 있어서 너무 ‘기계화’하여 계산하게 되며 당연히 이에 따른 결과는 정확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요지의 강연을 하였다.
홍기빈 소장이 일전에 강연을 하고 난 뒤 한 20살 여대생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대생은 자신이 20살인데 미래를 내다보고 연금을 들었으며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의 마법에 의해 수십 년 후에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여대생의 모습을 보고 홍기빈 소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물론 이 답변에는 정말 ‘다 때려 치고 놀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경제학자들과 그들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modeling하는 방법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을 하나의 기계의 개념으로 보고 예측 가능하다고 가정한 뒤 그에 맞춰서 경제학적인 예측을 쏟아낸다. 사회학자들은 더 나아가서 더 실체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사회학적인 현상까지도 이러한 모델링을 통하여 수치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웬만한 것은 다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 사는 것 같이 착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다 보면 개개인은 사회로부터 획일화 되도록 무심결에 교육받게 되며 자기도 모르게 인생의 목적과 그 추구방법이 마치 기계처럼 획일화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계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하면 ‘아니오’라는 답변을 많이들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와 사람이 기계처럼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 같은 사람이 이 우주에 단 한 명 밖에 없다고 느낄 때 매우 불안해 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위 ‘스펙’을 갖추려고 하고 이를 사회가 더 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척’하면서 ‘개성 있는 개인’을 중요시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획일화를 가지고 오게 되며 모든 사람이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Versatile) 멀티플레이어가 되길 원하는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또 그것에 맞춰 자신을 ‘성형’하는 획일화의 단계에 서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이 진정 어떤 길을 가야하고 내가 또 다른 ‘기계’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자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답변이었다.
여기서 다시 그 여대생의 자리로 돌아가보자. 홍기빈 소장이 답변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답변에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것을 위해 미래를 그렇게 준비해가는 것이며 혹시나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기계화 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세상을 살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 여대생이 많은 생각 없이 그저 돈을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맹목적인 미래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에겐 그런 미래속 꿈만 있을 뿐 현재 20대에서 고민해야 할 것들을 놓칠 수 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강연을 듣고 나서 혹시 내가 그냥 먼 미래의 화려함만을 쫓아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달리고만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복잡하고 수식화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획일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에서 개인에게 너무 획일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강연이었으며 경제학자임에도 경제학을 맹신하는 경향을 가진 현대사회 구성원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좋은 강연이었다.
얼마 전 전자과 Key Seminar의 연사로 초청된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님의 강연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그렇고 일반적인 ‘경제연구소’의 소장이 그저 그런 뻔한 경제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갈 줄 알았다. 부제목으로 ‘사람과 사회를 기계로 볼 수 있는가’라는 어딘가 경제학적이지 못한 문장을 붙여놓았기에 어떤 강연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요즘 시대에는 금융공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엄청 복잡한 수식과 눈 돌아가는 경제이론들을 통해 뭐든지 수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age)사태가 일어 나기 전에 다양한 Fancy한 금융지식과 공식을 통하여 돈을 빌려간 저소득층이 일년을 납기하고 몇 년 뒤에 몇 번째 납기를 하지 못하고 파산할 확률마저 계산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금융 상품까지 만들어서 판매할 정도로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전세계가 미국발 경제위기에 의해 휘청였고 당시에 경제학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은 빗발쳤다. 그렇게 당당하던 금융공학과 경제법칙의 정교함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었고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회의론적인 비판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실제 연사로 왔던 홍기빈 소장도 경제학자로서 물리학자에게 ‘경제학도들이 실제 측정할 수 있는 Data는 무엇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 고민해 본 결과, ‘별로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통화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 같은 경제학적인 수치도 제대로 측량하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통화량을 통한 물가조절방법은 경제학자들이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포기했으며 그 이후로 등장한 것이 금리조절에 따른 물가조절이라고 했다. 이렇듯 간단해 보이지만 결국 측량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개념이 경제학에는 정말 많고 사람 사는 세상이 V=IR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사람들과 그 사람 사는 세상을 modeling함에 있어서 너무 ‘기계화’하여 계산하게 되며 당연히 이에 따른 결과는 정확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요지의 강연을 하였다.
홍기빈 소장이 일전에 강연을 하고 난 뒤 한 20살 여대생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대생은 자신이 20살인데 미래를 내다보고 연금을 들었으며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의 마법에 의해 수십 년 후에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여대생의 모습을 보고 홍기빈 소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물론 이 답변에는 정말 ‘다 때려 치고 놀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경제학자들과 그들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modeling하는 방법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을 하나의 기계의 개념으로 보고 예측 가능하다고 가정한 뒤 그에 맞춰서 경제학적인 예측을 쏟아낸다. 사회학자들은 더 나아가서 더 실체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사회학적인 현상까지도 이러한 모델링을 통하여 수치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웬만한 것은 다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 사는 것 같이 착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다 보면 개개인은 사회로부터 획일화 되도록 무심결에 교육받게 되며 자기도 모르게 인생의 목적과 그 추구방법이 마치 기계처럼 획일화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계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하면 ‘아니오’라는 답변을 많이들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와 사람이 기계처럼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 같은 사람이 이 우주에 단 한 명 밖에 없다고 느낄 때 매우 불안해 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위 ‘스펙’을 갖추려고 하고 이를 사회가 더 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척’하면서 ‘개성 있는 개인’을 중요시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획일화를 가지고 오게 되며 모든 사람이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Versatile) 멀티플레이어가 되길 원하는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또 그것에 맞춰 자신을 ‘성형’하는 획일화의 단계에 서게 되기 마련이다. 자신이 진정 어떤 길을 가야하고 내가 또 다른 ‘기계’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자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답변이었다.
여기서 다시 그 여대생의 자리로 돌아가보자. 홍기빈 소장이 답변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답변에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것을 위해 미래를 그렇게 준비해가는 것이며 혹시나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기계화 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세상을 살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 여대생이 많은 생각 없이 그저 돈을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맹목적인 미래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에겐 그런 미래속 꿈만 있을 뿐 현재 20대에서 고민해야 할 것들을 놓칠 수 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강연을 듣고 나서 혹시 내가 그냥 먼 미래의 화려함만을 쫓아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달리고만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복잡하고 수식화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획일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에서 개인에게 너무 획일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강연이었으며 경제학자임에도 경제학을 맹신하는 경향을 가진 현대사회 구성원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좋은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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