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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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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439회 작성일 12-05-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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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


800만 관중시대를 바라보는 프로야구, 4년에 한번 씩 온 국민을 열광시키는 월드컵...
대한민국 국민들은 최근 들어 야구, 축구를 중심으로 미친듯이 열광한다. 나 역시 스포츠 광이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계속 해왔고, 스포츠를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즐긴다. 스포츠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짜릿한 명승부와 소속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역 팀에 맞게 혹은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팀을 신나게 응원한다. 이렇게 스포츠의 인기가 갈수록 커져가는 시점에 재밌는 책을 발견했다.

열광하는 스포츠 속에 실제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음을 꼬집는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사실 이 책을 택하기 전에 나는 학부시절 교양수업 시간을 통해서 스포츠 안에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음을 들은 적이 있었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는 나에게 다소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그 안에 숨겨진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부정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수업 내용을 다시 환기하고자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는 스포츠가 지닌 이데올리기성을 파고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강박적인 어떤 것, 따라서 유희이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부정적인 함의를 잔뜩 지닌 노동 말이다. 노동에 대한 강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에 대한 강제는 문화적으로 은연중에 작동한다. 건강에 대한 담론, 친교에 대한 담론, 건전한 생활에 대한 담론, 인간의 한계에 대한 담론이 그것이다. 이 담론 속에서 사람들은 스포츠란 자발적인 참여 속에 순수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활동이라고 정의 짓는다.

흔히 말하는 ‘스포츠는 순수하고 공정하다.’는 말은 현대 자유주의자들이 끈임 없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대상인 그 무엇과 닮아있다. 바로 ‘시장’이다. 스포츠의 순수하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허상은 정보의 상호 공유와 자유로운 자본 및 노동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시장’만큼이나 대단히 기만적이다. 실제로 ‘시장’이 온갖 불평등과 취약점을 갖고 있듯이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공정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관념 뒤에는 돈과 정치권력으로 더럽혀진 스포츠의 작동방식이 은폐되어 있다. 미국 사회에서 NBA선수의 대부분이 흑인이고, NFL선수의 대부분이 백인인 이유는 흑인이 농구를 잘해서, 백인이 아이스하키를 잘해서가 아니다. 공과 골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농구에 비해 부대시설과 장비 등이 필요한 아이스하키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표면적인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미국의 하층계급은 대다수 유색인종이다. 이것은 스포츠와 돈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자신의 정치 아젠다를 선전하는 훌륭한 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스포츠와 정치권력의 결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 역시 태릉선수촌에서 국가 주도적으로 엘리트 체육인을 육성하고 있고, 전두환 시절 프로야구의 출범은 한국에서 정치권력이 스포츠 영역에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스포츠 수용자들의 반응이 미미했다면 스포츠는 현대 사회에서 이토록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종 프로 스포츠와 올림픽, 월드컵이 자신의 생계유지 다음으로 중요한 현대 사람들은 왜 스포츠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저자는 현대인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 상태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한다. 첫째, 예측 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지닌 스포츠에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가진 본성 중 공격성을 표출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기를 보고 응원하면서 그러한 스트레스를 푼다.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일상생활이 너무나 안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는 모험의 욕망을 풀 곳이 바로 경기장이라는 설명이다. 저자의 설명이 불완전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현대인들은 스포츠를 통해 분명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정치나 경제기사가 차지해야 할 신문 1면 톱기사로 박찬호, 이승엽, 한국축구 대표팀이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것도 사실은 언론플레이의 하나로 이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은 잊으면 안 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부정적인 정치권력을 남용하는 시점이 되면 국민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연예인 X파일을 공개하거나 스포츠 이슈 등을 퍼트리는 것은 이제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스포츠가 자신의 삶 속으로 은연중에 침투해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스포츠가 국가와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이데올로기적 기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거리응원에 나서며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도 한국인이냐?“는 비판을 퍼붇는다. 공정한 바탕에서 경쟁하는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현실 역시 합리적인 조건 하에서 동등히 상호 경쟁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이념을 우리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저항으로서의 수단보다는 체제 동조적으로 곧잘 이용되는 스포츠는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빼앗는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데올로기’가 모두 부정적인 함의를 지니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 체제에서 어떻게 사회가 운영되는가를 반영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성’이라고 할 때 스포츠가 이데올로기적 기재를 가진다는 점은 스포츠를 비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현 체제의 취약성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가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매체가 되었음은 거부할 수 없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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