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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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민 스포츠인만큼, 별명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김별명’, ‘적토마’, ‘돌부처’ 등이 그 별명들인데, 그 중에 ‘신’ 이라고 불리는 자가 있다. 바로, ‘양신’이라고 불리는 양준혁 선수이다. 그는 현역으로 선수 생활을 했던 2010 년까지, 통산 타점 1위, 득점 1위, 안타 1위, 홈런 1위 등의 온갖 기록들을 남기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기록들도 화려하지만 항상 성실하고 구수한 모습에, 많은 야구팬들이 좋아하는 선수이다.
그런 양준혁 선수가 KAIST 에 왔다. 야구를 가르치러 온 게 아니라 강연을 하러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운동 선수들은 운동만 해서 말을 잘 못 할 거라는 생각에 강의 내용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산만한 덩치부터 나를 압도했고, 깨알 같은 사투리는 청중들을 그의 강연에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어라’ 이번 강연의 주제였다. 이 단어를 곱씹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멋진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아직 젊은 청년인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양준혁은 수많은 걸싸한 기록들을 보유한 슈퍼타자로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런 슈퍼타자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내야 땅볼을 치고서도(아웃될 게 뻔한 상황에서도)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성실한 모습으로 유명한 선수이다. 프로 선수로 뛰었던 약 17년 동안의 세월 동안, ‘단 한번도 1루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지 않은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이다.
사실 그의 수많은 기록들을 만든 것은, 그의 성실함과 꿋꿋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는 실력도 뛰어났지만 정작 MVP 는 단 한번도 받지 못한 불운의 선수였다. 항상 누군가의 뒤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주어진 일에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최선을 다한 결과 최다 홈런, 최다 안타 등의 기록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간다. 특히, 공부를 부쩍 잘 해서 항상 주위의 칭찬을 받고 자라온 사람에게는 주변의 인정과 찬사가 살아갈 힘이 될지도 모른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소유되는 특성인 것 같다. 특히나 연구자로서의 나에게는, 흔히 ‘대박’이라고 일컬어지는 훌륭한 논문을 쓰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는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홈런이 아닌 평범한 땅볼에도,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저 1루를 바라보며 전력질주 했던 양준혁처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 맡겨진 일에 열정으로 임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좋은 결과도 함께 따라오지 않을까.
양준혁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2002년에 양준혁은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선수협의회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을 접을 뻔 하다가 당시 삼성의 김응룡 감독 덕에 복귀를 했는데, 9년 연속 3할의 타율을 유지하던 그가, 그 해에는 처음으로 2할대를 기록한 것이었다. 양준혁은, ‘지금처럼 해서는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타격 폼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23년간 몸에 벤 타격폼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을텐데도, 수 백번, 수 천번 되풀이 해가며 실패를 분석하며 수정해 나간 결과, ‘만세타법’(방망이를 휘두르고 난 뒤의 포즈가 마치 만세를 하는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 불리는 타법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 다음 해 홈런과 타점 최고 기록을 올리게 된다.
그는 어려움이 빗겨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라, 그 벽에 부딪치고, 늪에 빠져도 끊임없이 헤어 나올 끈기와 정신력이 있었다. 얼마 전, 박사 1년차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초짜 석사생으로서 연구 자세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물었던 질문에 그 친구는, 자신은 ‘석사 2년 동안 실패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실패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앞두고 있는 지금, 훌륭한 어머니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런 양준혁 선수가 KAIST 에 왔다. 야구를 가르치러 온 게 아니라 강연을 하러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운동 선수들은 운동만 해서 말을 잘 못 할 거라는 생각에 강의 내용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산만한 덩치부터 나를 압도했고, 깨알 같은 사투리는 청중들을 그의 강연에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어라’ 이번 강연의 주제였다. 이 단어를 곱씹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멋진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아직 젊은 청년인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양준혁은 수많은 걸싸한 기록들을 보유한 슈퍼타자로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런 슈퍼타자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내야 땅볼을 치고서도(아웃될 게 뻔한 상황에서도)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성실한 모습으로 유명한 선수이다. 프로 선수로 뛰었던 약 17년 동안의 세월 동안, ‘단 한번도 1루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지 않은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이다.
사실 그의 수많은 기록들을 만든 것은, 그의 성실함과 꿋꿋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는 실력도 뛰어났지만 정작 MVP 는 단 한번도 받지 못한 불운의 선수였다. 항상 누군가의 뒤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주어진 일에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최선을 다한 결과 최다 홈런, 최다 안타 등의 기록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간다. 특히, 공부를 부쩍 잘 해서 항상 주위의 칭찬을 받고 자라온 사람에게는 주변의 인정과 찬사가 살아갈 힘이 될지도 모른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소유되는 특성인 것 같다. 특히나 연구자로서의 나에게는, 흔히 ‘대박’이라고 일컬어지는 훌륭한 논문을 쓰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는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홈런이 아닌 평범한 땅볼에도,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저 1루를 바라보며 전력질주 했던 양준혁처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 맡겨진 일에 열정으로 임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좋은 결과도 함께 따라오지 않을까.
양준혁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2002년에 양준혁은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선수협의회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을 접을 뻔 하다가 당시 삼성의 김응룡 감독 덕에 복귀를 했는데, 9년 연속 3할의 타율을 유지하던 그가, 그 해에는 처음으로 2할대를 기록한 것이었다. 양준혁은, ‘지금처럼 해서는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타격 폼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23년간 몸에 벤 타격폼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을텐데도, 수 백번, 수 천번 되풀이 해가며 실패를 분석하며 수정해 나간 결과, ‘만세타법’(방망이를 휘두르고 난 뒤의 포즈가 마치 만세를 하는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 불리는 타법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 다음 해 홈런과 타점 최고 기록을 올리게 된다.
그는 어려움이 빗겨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라, 그 벽에 부딪치고, 늪에 빠져도 끊임없이 헤어 나올 끈기와 정신력이 있었다. 얼마 전, 박사 1년차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초짜 석사생으로서 연구 자세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물었던 질문에 그 친구는, 자신은 ‘석사 2년 동안 실패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실패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앞두고 있는 지금, 훌륭한 어머니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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