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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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사람이 태어나서 20년, 30년 후의 그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 일까?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아마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한다 하더라도 힘든 일일 것 같다. 갓 태어난 태아일 때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으면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똑같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차만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슷한 행동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유전자는 못 속이는군”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유전자라는 개념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인간의 서로 다른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유전자적 관점에서 풀어낸 유명한 과학자이며, 1976년 그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첫 출판 이후 3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기적 유전자론은 정설이 되었으며 인간을 포함한 동물행동에 대한 난해했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를 의인화시키면서 지능과 생존본능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자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선택의 순간을 맞이 했을 때, 저마다 각각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그에 맞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원초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때의 자연선택은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 일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우리의 성격과 취향을 비롯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일까. 도킨스는 유전자를 마치 40억 년 전 창조된,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자기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되었으며, 현재의 인간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에 의해 모든 행동이 장악된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여 약간은 섬뜩한 면도 있지만 이 책에서 풀어내는 유전자에 대한 적절한 생물학적 비유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 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간혹 그들이 행하는 이타적 행동들 또한 결국에는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동물의 이타적 행동 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 뚜렷한, 새끼에 대한 엄청난 헌신도 이기적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종의 번식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끼에 대한 헌신이 전혀 없는 생명체들도 많다. 거미의 경우 대부분의 거미 새끼들이 부화하자마자 다른 종의 먹이가 되고 만다. 겉으로 보기에 거미들은 종의 번식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종의 유지를 위해서는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종의 번식과 생명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이기적인 유전자 (Selfish Gene) 라는 개념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 수도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욕망이다” 라는 심리학자 홉스의 말 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생명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이기적인 유전자보다 협력적 유전자(cooperative Gene)이라는 말이 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말이 아닐까 한다.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으로 이루어진 자연 속에서 각 종들은 서로에게 결국에는 없어서는 안될 환경의 일부로서 양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유전자의 영향을 좀 더 다르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은 스스로 새롭게 변화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문명을 창조해 내었으며, 2012년인 현재까지 끊임없이 삶의 진화를 이뤄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 행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에서 기인하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에 대하여 얘기할 때 그의 부모님을 보면서 우월한 유전자를 받았다는 말로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의 삶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유전자적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믿고 살아갈 때 비로소 새로운 도전과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태어나서 20년, 30년 후의 그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 일까?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아마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한다 하더라도 힘든 일일 것 같다. 갓 태어난 태아일 때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으면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똑같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차만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슷한 행동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유전자는 못 속이는군”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유전자라는 개념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인간의 서로 다른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유전자적 관점에서 풀어낸 유명한 과학자이며, 1976년 그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첫 출판 이후 3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기적 유전자론은 정설이 되었으며 인간을 포함한 동물행동에 대한 난해했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를 의인화시키면서 지능과 생존본능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자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선택의 순간을 맞이 했을 때, 저마다 각각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그에 맞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원초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때의 자연선택은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 일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우리의 성격과 취향을 비롯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일까. 도킨스는 유전자를 마치 40억 년 전 창조된,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자기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되었으며, 현재의 인간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에 의해 모든 행동이 장악된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여 약간은 섬뜩한 면도 있지만 이 책에서 풀어내는 유전자에 대한 적절한 생물학적 비유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 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간혹 그들이 행하는 이타적 행동들 또한 결국에는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동물의 이타적 행동 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 뚜렷한, 새끼에 대한 엄청난 헌신도 이기적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종의 번식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끼에 대한 헌신이 전혀 없는 생명체들도 많다. 거미의 경우 대부분의 거미 새끼들이 부화하자마자 다른 종의 먹이가 되고 만다. 겉으로 보기에 거미들은 종의 번식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종의 유지를 위해서는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종의 번식과 생명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이기적인 유전자 (Selfish Gene) 라는 개념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 수도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욕망이다” 라는 심리학자 홉스의 말 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생명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이기적인 유전자보다 협력적 유전자(cooperative Gene)이라는 말이 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말이 아닐까 한다.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으로 이루어진 자연 속에서 각 종들은 서로에게 결국에는 없어서는 안될 환경의 일부로서 양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유전자의 영향을 좀 더 다르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은 스스로 새롭게 변화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문명을 창조해 내었으며, 2012년인 현재까지 끊임없이 삶의 진화를 이뤄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 행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에서 기인하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에 대하여 얘기할 때 그의 부모님을 보면서 우월한 유전자를 받았다는 말로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의 삶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유전자적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믿고 살아갈 때 비로소 새로운 도전과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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