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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폭군 - 진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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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택용
댓글 0건 조회 6,596회 작성일 14-04-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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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우리가 진시황제를 그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리장성, 분서갱유, 아방궁과 같은 폭군으로서의 면모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이는 중국 사람에게도 당연할 것이다. 유교적 문화가 자리 잡은 지 2000년이 넘는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은 대부분 폭군으로, 왕들의 경각심을 위한 본보기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으로 쑨원과 바로 이 진시황을 손꼽는다. 그만큼 지금의 중국을 만드는데 있어 굉장한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고 그가 남긴 많은 미스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내가 이 책을 뽑아든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조금 더 진실 된 진시황에 다가가기 위해 책을 넘기면서도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애를 썼다.

전체적으로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들, 그의 출생 배경이나 성장시절, 중국 대륙을 통일 시키는 과정, 황제의 자리에서 죽음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보단 어디서나 알 수 있는 내용이 줄거리로 들어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이끌어낸 작가의 진시황에 대한 객관적 평가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부터 지금까지 역사기술에 있어 기술자의 주관이야 모두가 알 듯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지만 진시황의 진면목을 벗겨내기에는 유교중심의 사회는 가혹할 정도로 길었다. 유교에서 모범적인 군주는 효성이 지극해야하나 진시황은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고 늘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수양해야 하나 분서갱유를 행하였고 만리장성과 아방궁 등의 토목공사로 백성을 핍박했으며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환관이 날뛰게 한 점은 유교적 관점에서의 진시황은 폭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작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시황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해주고 편견을 책장과 함께 날릴 수 있도록 해준다.

진나라 군대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부터 제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 한, 조, 위, 초, 연, 제 6개국이 잇달아 진나라에게 무너졌다. 평균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한 나라씩. 이들 나라가 수백 년 동안 할거해 왔음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역시 기록에는 전하지 않는 사정이 있었으리라 여겨지지만, 기록으로만 볼 때 우선 진나라가 중국의 서쪽 외곽에 떨어져서 험준한 지형에 의존해 외침을 잘 받지 않으며 오랫동안 실력을 키웠던 점, 과감하고 실용주의적인 개혁이 미친 부국강병의 효과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진시황이라는 지도자가 보여준 리더십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사람됨이 몹시 잔인하고 냉혹했다는 것은 모두가 지적한다. 그를 폄하하기 위한 역사왜곡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도, 모든 기록이 한결 같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라 실제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헛된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소중히 여겼으며 실수를 했다고 깨달으면 체면에 아랑곳없이 곧바로 시정했다. 운하 건설을 책임지고 있던 정국이라는 사람이 한나라의 첩자임이 밝혀지자 국내에 머물던 모든 외국인을 추방하도록 했지만, 후일 승상이 되어 천하통일의 일등공신 역할을 할 이사가 “진나라는 대대로 외국인들을 우대하여 발전해왔다”고 반론을 올리자 곧바로 취소하며 전보다 더 외국의 인재를 중시했다. 한비자의 경우 그 한 사람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한나라와 전쟁을 벌였다고도 한다. 또 장군 왕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좌천시켰다가, 왕전의 말이 맞았음을 알고는 곧바로 몸소 왕전의 거처로 달려가 용서를 빌고는 재기용했다고 한다.

진시황은 이처럼 여러 국보급 인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시켰고, 병사들에게도 전공을 세울 경우 최대한의 혜택을 보장함으로써 용맹하게 싸우게끔 부추겼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정치에 은밀히 공작을 해서 안으로 내분에 휩싸이게 하고, 밖으로 여러 나라가 단합해서 진나라에 대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 번에 한 나라씩, 전력을 기울여 단번에 적의 수도를 함락시키는 방법으로 무너뜨려갔다. 또 자료를 잘 살펴보면 진시황이 잔인무도하다는 점에서 폭군이라는 비방은 숱하게 있지만, 사치향락을 일삼았다는 쪽의 비방은 별로 없다. 주지육림이나 삼천궁녀 같은 이야기는 전설로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반면 도무지 의심이 많아서 신하들이 일을 잘하나 계속 감시하므로 괴롭다는 푸념이 많이 보이고, 스스로는 죽간으로 지어진 공문서를 매일 120근씩 처리하지 않고는 먹지도 쉬지도 않았다고 하니 일 중독자로서 부하들을 매섭게 다그치는 호랑이 같은 관리자였으되 자기 개인의 쾌락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희생시키는 폭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하였든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진시황은 이후 수천 년간 중국의, 아니 동양 군주들의 모델이었다. 결국 한 왕조를 비롯한 역대 왕조는 진시황의 군현제를 유지했고, 황제라는 이름과 지배원리를 답습했으며, 사상을 통일하려고 했다. 진시황이 수립한 강력한 동양적 군주제는 천하가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국가적 사업이 의욕적으로 추진되는 장점을 낳은 반면, 폭정이 행해질 가능성과 사상의 자유가 심하게 억압될 가능성도 낳았다. 그리하여 군주 제도를 인정하고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 견제하고 구속하려는 정치사상의 모순된 입장이 생기지 않았을까. 진시황에 대한 사실의 왜곡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을지 모른다.

인물 평전을 읽으면 그러하듯 책을 덮고 나면 동시에 그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머릿속을 채운다.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당시의 진시황은 영웅이었다. 야망이 크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쉬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며 잘못된 점은 신속하게 고치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저 폭군으로,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있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진시황에 대한 진실된 모습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영정(진시황의 이름)의 억울함을 조금은 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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